[미디어펜=김소정 기자]단절 13개월만에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것은 공교롭게도 7월 27일 정전협정일을 기해서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날짜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것까진 없다면서도 “이번 통신선 복원은 양 정상간 신뢰에서 나온 조치”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지난 27일 남북 간 통신연락선 복원을 전격 발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4월부터 여러차례 친서를 주고받았고, 그 결과 남북 정상이 통신선 복원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도 이런 사실을 상기시키며 “양 정상이 정상간 신뢰에 기반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한 실천적인 우선적 조치를 통신선 복원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측의 이번 통신선 복원 합의 배경과 관련해 일각에선 ‘극심한 경제난 때문에 입장을 바꿨다’ ‘북미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 남북 간 연락 통로를 열었다’ ‘현 교착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향후 정세를 주도하기 위해 취한 조치’ 등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당국자는 “북미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남북관계에서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다는 분석은 타당성이 꽤 있다고 본다”면서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구분해서 발전시켜가는 논리도 있다. (이번 통신선 합의도) 남북관계 그 자체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런 통일부 고위당국자의 분석을 토대로 볼 때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손상됐던 남북 정상간 신뢰가 어느 정도 회복됐고, 북한 정권이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북미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어보인다.
그 배경에 대북제재 장기화 및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이 있든,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방역 및 백신 협력이 필요하든 남북 통신선 복원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라는 분석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미국 평화연구소의 공동 세미나에 참석한 한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왔다.
특히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그동안 한미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화답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상회담도 생각해볼 수 있다”면서 “북한에서 메시지를 보내왔으니 우리는 다음 행동을 어떻게 취할지 고민해야 한다. 새판이 깔렸는데 이를 잘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세미나에서 김기정 전략연구원장은 “북한이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중요한 상징이다. 서울뿐 아니라 워싱턴에 대한 사인이기도 하다. 앞으로 2주가 중요하고, 미국도 좀 더 분명하게 북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시점”이라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따라서 한미가 우선 8월로 예정된 연합훈련을 연기 또는 축소 운영하고, 바이든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메시지를 낼 경우 북미 대화에 시동을 걸 수도 있어보인다. 북미 비핵화 대화가 시작될 경우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다시 필요해지고 남은 임기 내 4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가능성도 커진다.
앞서 남북 통신선 복원 직후 일부 언론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고, 이를 청와대가 “논의된 바 없다”며 즉각 부인한 바 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제가 아는 한 그런 건 없었다”면서도 “다만 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선 어떤 의제든, 어떤 장소든, 어떤 조건에서든 우리로선 언제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사실 문 대통령과 김 총비서는 이미 전격적이고 비밀리에 만난 적이 있다. 지난 2018년 5월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가진 2차 남북정상회담이다. 또 친서를 주고받을 정도로 소통 채널도 열려 있는 만큼 두 정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만남이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현재 여권에서도 남북정상회담 띄우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당대표는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려는 마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최근 언론에 베이징올림픽을 남북정상회담 적기로 볼 수 있다며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통해 잃어버렸던 남북관계 10년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통해 남북 정상이 다시 대면하는 시나리오와 함께 통일부가 우선 추진하는 남북 영상회담 시스템 및 안심 대면회담 시스템이 완비될 경우 이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문 대통령과 김 총비서가 화상으로 만날 가능성도 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 때 청와대에서 언급한 ‘한미엔 퍼미션이 필요없다’던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고, 가령 남북 철도 연결 및 현대화 사업에 대한 미국의 용인이 이뤄진 상태라면 더욱 가능하다.
하지만 대면 회담이든 화상 회담이든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기 위해선 북미 비핵화 협상이 다시 궤도에 올라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남북 협력 지지’에도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해야 하는 선결 조건이 있다. 남북대화가 본격 시작될 경우 북미 간 비핵화 방법론의 이견을 좁히기 위한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