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정부와 기업들이 잇따라 로드맵을 내놓는 등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우리 생활에 녹아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열린 한국가스공사 국정감사에서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김해 제조식 수소충전소 경제성이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했다. 30억원을 들여 현대기아차의 설비를 매입해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나, 3억 2100만 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5989만 원의 손실을 입는다는 것이다. 이를 포함한 공사의 손실액은 19억 원으로 추정됐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담긴 수소산업 관련 비용도 60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앞서 2050년까지 에너지·산업·수송 등에 필요한 수소량을 최대 2920만 톤으로 전망했으며, 이 가운데 2390만 톤(81.8%)을 호주·중동·러시아·북아프리카 등에서 수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가스공사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수소 액화에 31조 5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한국전력공사의 평균 판매단가(kWh(테라와트아워)당 109.8원)에 수소 액화에 필요한 전력량 286.8TWh를 곱한 수치로, 수소가 천연가스 보다 100도 가량 낮은 -252.8℃로 액화돼야 한다는 점을 반영했다.
또한 액화수소를 선박으로 운송하는 데 28조 7000억 원, 수소 저장 및 수출입 터미널 건설에 필요한 비용 5조 8190억 원 등 수소를 액화·수송·저장하는 데에만 약 66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수소 수입액이 더해지면 수소경제를 위해 투입되는 자금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액화수소 운송이 힘들다는 점도 지적됐다. 액화천연가스(LNG) 대비 밀도가 낮아 증발가스 발생률이 10배 수준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높은 성능의 단열재를 적용한 진공단열기술 등 고난도 기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린수소발전설비가 2019년 3.2GW(기가와트)에서 2030년 270GW로 많아지는 등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소 가격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으나, 전력 가격 급등 및 인프라 부족 등에 부딪혀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린 수소 생태계 확장을 위해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가 늘어나야 하지만, 풍력발전 의존도를 높인 유럽에서 전기료가 두 자릿수 폭등했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에너지 전환에 따른 한전의 부담이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철강사도 앞서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생산력을 3만 톤 단위로 끌어올리고, 몇백만 대 이상의 수소차가 보급되면 수소 사업의 경제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8월 글로벌 수소 연료 전지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100% 가까운 성장을 이루기는 했으나, 여전히 1만 1200대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업계가 추진 중인 수소환원제철도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9기)와 현대제철(3기) 등 총 12기의 고로를 교체하기 위해 드는 비용만 68조 5000억 원으로, 유지비도 수십 조에 달하기 때문이다. 68조 5000억 원은 올 2분기 기준 업계 영업이익 6년 반에 달하는 수치다.
수소환원제철은 기존 제철 공법에 쓰이던 석탄 대신 수소환원제를 활용하는 것으로,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및 실증 △산업용 수소 단가 현실화 △수소 공급망 구축 △대규모 전력 등의 요소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 의원은 연간 조강 생산력(3800만 톤)과 현재 그린 수소 가격(kg당 1만 3000원)을 기준으로 그린 수소 구입비가 연간 48조 1000억 원에 육박하는 등 업계의 부담이 석탄 사용 시 보다 8배 가량 가중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3.7GW의 발전 설비 구축 등 3조 5000억 원 상당의 전력 구입비도 필요하다면서 수소 가격 인하 목표에 대한 현실성 검증을 촉구했다.
국내 그린 수소 생태계가 선진국 대비 10년 이상 뒤쳐졌다는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해 추진하는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생 에너지로 수소를 만들어야 하지만, 한국의 경우 2030년까지 그린 수소 전량을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을 주도하는 포스코도 지난해 7000톤이었던 수소생산력을 2050년 200만 톤으로 증가시킨다는 전략이지만, 2030년까지 블루 수소 50만 톤 생산 체제를 갖추는 등 그린 수소가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은 2030년 이후가 될 전망이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2040년대에 그린 수소 생태계를 조성할 방침으로, 2050년에도 그린 수소 비중이 20%에 머무는 등 대부분을 그레이·블루수소가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국내에서도 그린 수소 생산을 위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으나, 지난해 제주도에서만 풍력 발전기 출력 제한으로 1만 9443GWh에 달하는 전력이 인프라 부족으로 버려졌다고 질타했다. 이는 그린 수소 18~20톤을 생산 가능한 양으로, 수소차 2843~3159대를 충전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 환경 규제 등에 힘입어 2050년 글로벌 수소 경제 시장 규모는 3000조 원으로 추산되는 중으로, 탄소 배출권 구매 부담 완화를 비롯해 기업의 수익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요소가 없지 않다"면서도 "수소 가격이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까지 낮아지지 않는다면 설비투자가 수익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등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