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한진 기자] “대한민국의 미래는 인재 양성에 있다.”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인재보국 경영철학에 따라 지난 1973년 SK 단독후원으로 첫 전파를 탄 ‘장학퀴즈’가 오는 18일 방송 50주년을 맞는다.
1970년대 주말, 하이든의 트럼펫 연주곡 시그널이 온국민을 흑백TV 수상기 앞으로 불러 모았던 장학퀴즈는 청소년들의 문화 아이콘이자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교육 요람으로 기능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최종현 선대회장은 일찍이 자원·기술이 부족한 한국이 강대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인재를 키우는 것임을 설파했다. 이에 SK는 장학퀴즈 후원을 비롯해 서해개발(1972년)∙한국고등교육재단(1974년)∙최종현학술원(2019년) 설립 등 최태원 회장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인재양성 관련 사업을 펼쳐왔다.
장학퀴즈 특별방송…과거-현재 잇는 퀴즈쇼 구현
EBS는 18일 낮 12시05분 ‘장학퀴즈 50주년 특집–인재의 비밀’을 방송한다. ‘50년 역사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이 컨셉으로 경기도 판교의 SK텔레콤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최첨단 확장현실(XR) 기법으로 생생히 구현된 옛날 장학퀴즈 스튜디오에서 당시 출연자와 현재 출연자들이 50년 시공을 뛰어넘어 흥미진진한 퀴즈대결을 펼친다. 18년간 진행을 맡았던 차인태 전 아나운서와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등도 출연해 장학퀴즈 추억을 되짚고 시대에 따라 변화한 인재상을 소개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EBS 장학퀴즈 50주년 특별방송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최태원 회장은 특집방송 축사에서 “장학퀴즈는 미래 인재로 성장할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문화코드가 되어왔다”며 “어느 때보다 변화의 파고가 높은 시대를 맞아, 청소년 여러분이 변화를 창조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도전정신으로 미래를 앞서가는 주역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장학퀴즈는 50년 역사만큼 숱한 기록을 쏟아냈다. 1973년 2월 MBC가 방송을 시작했고, 1997년 1월부터는 EBS로 옮겨 방송을 이어왔다. 이미 1993년에 국내 최장수 TV프로그램으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한국기록원도 50주년을 맞아 새로 최장수 인증을 보탰다. 총 2344회가 방영됐는데, 출연자만 약 2만5000명, 방송시간이 2000시간에 달한다.
최종현-최태원, 대 이은 SK 인재보국
먹고 살기 힘들고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에 올인했던 1970년대부터 최종현 회장은 기업인으로서는 선지적으로 인재양성 사회공헌에 다각도로 뛰어들었다.
먼저 1972년 인재육성을 위한 조림사업에 나서 서해개발(현 SK임업)를 설립했다. 3000만평 임야에 수익성 좋은 나무를 심어 30년 후부터 1년에 100만평씩 벌목함으로써 회사경영과 무관하게 장학기금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겠다는 선순환식 수목경영을 도입한 것이다. 여의도 면적 14배에 달하는, 당시 황무지였던 충청북도 충주 인등산, 영동 시항산, 경기도 오산 등 4100ha 임야에는 현재 자작나무, 가래나무, 호두나무 등 조림수 40여종, 조경수 80여종 등 330만 그루가 빼곡히 들어서 ‘인재의 숲’을 이뤘다.
3차원 확장현실 기술로 구현된 1973년 2월 1회 장학퀴즈 스튜디오에서 차인태 아나운서가 등장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1974년에는 ‘일등 국가, 일류 국민 도약과 고도의 지식산업사회 건설’이라는 원대한 포부로 민간기업 최초의 장학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당시의 석유파동에다 겨우 50대 기업에 드는 선경이 장학사업을 벌이긴 어렵다는 사내 반대가 나오자, 최종현 회장은 사재를 털어 장학사업을 벌였다. 이렇게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지난 50년간 한국인 최초의 하버드대 종신 교수인 박홍근 교수, 하택집 존스홉킨스대 석좌교수, 천명우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등 세계 유명 대학의 박사 861명을 배출했고, 장학생 4261명을 지원했다.
최태원 회장은 2019년 ‘최종현학술원’을 창립했다. 최종현 선대회장 20주기를 맞아 인재육성 유지를 잇기 위해 사재인 SK㈜ 주식 20만주(당시 520억원 상당)를 출연했고 스스로 학술원 이사장을 맡았다. 또 SK그룹은 지난 2012년 서울 동대문구 카이스트(KAIST) 홍릉 캠퍼스에 ‘사회적기업 MBA’ 과정을 개설, 청년실업이나 양극화 등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할 혁신적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현재 졸업생이 153명, 창업 기업만 144개에 달한다.
EBS 장학퀴즈 50주년 특별방송이 SK 인재양성 요람인 충청북도 충주시 인등산에서 시작되는 장면. /사진=SK 제공
”기업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
최종현 회장은 1995년 울산대공원 조성을 약속하며 “우리는 사회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경영철학이 SK의 인재양성 교육사업을 추동했다.
1972년 MBC가 장학퀴즈 광고주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을 때였다. 최종현 회장은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조건 없이 지원하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다. 당시로는 처음인 기업 단독후원사 자격이었다.
1980년 장학퀴즈 500회 특집이 방영될 무렵, 최종현 회장은 제작진 등과의 식사자리에서 “그간 장학퀴즈 투자액이 150억~160억원”이란 임원의 말에, “그럼 우리는 7조원쯤 벌었다. 기업 홍보효과가 1조~2조원쯤, 5조~6조원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교육시킨 효과”라고 설명해 주변을 숙연케 했다.
국비 장학생도 없었던 시절, 한국고등교육재단이 1970년대 초반 당시 서울 아파트값 한 채가 넘는 유학비용을 지급하는 장학생 모집공고를 내자 대학사회가 떠들썩 했다.
재단 장학생 출신인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말도 안되는 공고였다. 해외유학을 가는데, 학업 외 아무 조건 없이 엄청난 등록금과 생활비까지 보장해 준다고 했다. 혹시 이상한 종교단체나 중앙정보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으로 의심까지 했다”고 회고했다.
1973년 1회 방송부터 18년간 장학퀴즈 진행을 맡았던 차인태 아나운서가 50년만에 출연자와 재회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충주 인등산 조림사업을 시작한 1970년대 초반 한 임원이 “이왕이면 경기도나 수도권 산에 투자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가, 최종현 회장한테 “내가 땅장수인 줄 아느냐”며 혼쭐이 난 일화도 유명하다.
최종현 회장은 1980년 전국경제인연합회 강연에서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기업을 경영한다는 소박한 원리는 잊고 있는 것 같다”며 “나는 일생을 통해 80%는 인재를 모으고, 기르고, 육성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1호 장학생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종현 회장은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한 경제계의 리더로서 높이 평가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위해 시민적 책무를 다해 사회발전에 헌신했던,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 전체의 큰 지도자로 길이 칭송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