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대한항공이 마일리지 개편안을 전면 재검토 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의 불만에서 시작된 이번 논란은 정부와 정치권의 비판이 가세하면서 전면 재검토라는 안을 이끌어 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또 하나의 전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항공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20일 “마일리지 제도 개편과 관련해 현재 제기되는 고객 의견을 수렴해 전반적인 개선 대책을 신중히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4월 시행 예정이던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은 단거리 노선의 경우 기존보다 마일리지 차감 폭이 작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장거리 노선일수록 차감 폭이 크다.
인기 노선인 인천~뉴욕 구간을 마일리지로 구매할 경우 일반석이 기존 3만5000마일에서 4만5000마일로, 프레스티지석(비즈니스석)은 6만2500마일에서 9만 마일로, 일등석은 8만 마일에서 13만5000마일로 늘어난다.
이에 소비자들은 ‘개편’이 아닌 ‘개악’이라며 불만을 제기했고, 정부와 정치권까지 나서 쓴 소리를 내놓았다.
먼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항공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이번 개편안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고, 지난 19일에는 “코로나 기간 살아남게 해줘 감사하다는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은 하지 못할망정 불만을 사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비난했다.
정치권에서는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이 나섰다. 성 정책위원장은 지난 17일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민이 낸 혈세로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받고 국책은행을 통한 긴급 자금을 지원받은 것을 잊고 소비자를 우롱하면 되겠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한항공 측은 “현행 마일리지 공제 기준으로 중장거리 국제선 왕복 보너스 항공권 구매가능한 마일리지를 보유하고 있는 회원은 열 명 중 한 명 수준”이라며 “이번 개편안이 적용되면 다수의 회원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백기를 든 대한항공은 재검토를 통해 마일리지 공제율을 재조정하고, 마일리지로 사용 가능한 보너스 항공권 좌석 비중을 기존 전체 좌석의 5%에서 10% 이상으로 늘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편안 시행도 4월이 아닌 항공 운항이 정상화되는 시기로 늦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마일리지 개편안 논란은 일단락 됐지만,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전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이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고, 사기업이 이에 순응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 합병 절차를 밟고 있는 대한항공이 사실상 항공업계를 독과점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강한 메시지를 냈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독과점 위치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는 국내에서의 논리일 뿐, 글로벌 항공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대한항공의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해결해야 될 현안이 산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일리지 개편안 역시 그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이번 마일리지 개편안이 성급하게 변화를 줬다는 점에서 불만이 있을 수 있다”면서 “대한항공도 이런 점들을 배려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정부가 기업의 경영 방침에 대한 의견이 있을 수 있어도, 이에 대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내놓아 기업을 옥죄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대한항공이 국내에서는 독과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밖에서는 외국 항공사와 경쟁해야 한다는 점에서 애로 사항이 있을 것”이라며 “이런 부분을 간과한 채 정부가 강한 메시지를 낸 것은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정치권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대한항공이 꼬리를 내린 측면이 있다”며 “마일리지 개편안이 다소 성급했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개입으로 기업 정책을 바꾼 것은 좋지 않은 전례”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