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 ‘반도체지원법’을 공개한 가운데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걱정이 더해졌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미국 측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중국에서의 생산 비율을 줄여가게 되지 않겠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미디어펜은 기로에 선 한국 반도체의 현 상황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장기화 된 경기 침체로 수요 부진이 지속되면서 반도체 가격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외교 문제까지 겹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는 기업의 단순한 현안을 넘어선 외교의 영역이어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또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제시하는 질서에 따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장기화 된 경기 침체로 수요 부진이 지속되면서 반도체 가격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외교 문제까지 겹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진은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 /사진=삼성전자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이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에 대한 입장표명을 아끼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2조2700억 원)를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세우고 있다. SK하이닉스도 150억 달러(약 19조6500억 원)를 들여 미국에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 상무부는 1억5000만 달러(약 1965억원) 넘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초과 이익 공유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신청서를 낼 때 제출한 예상 수익보다 많은 이익이 발생하면 받은 보조금의 75%까지 미 정부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반도체 지원법은 10년간 중국에서 공장 신‧증설과 장비 교체 투자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뒀다.
아직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도 높이고 있어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설비를 투자할 때 이에 따르는 혜택을 어느 정도 기대했을 텐데, 미국 정부가 예상치 못한 요구 조건을 제시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산업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반도체 수출액은 59억6000만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42.5%(44억 달러) 급감했다. 지난해 8∼9월 한 자릿수였던 반도체 수출 감소 폭은 10월 -17.4%, 11월 -29.9%, 12월 -29.1%, 올 1월 -44.5%로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가격 하락도 지속되고 있다. 국내 주력 반도체 품목인 D램 고정가격은 지난해 1∼4월 평균 3.41달러에서 올 1∼2월 평균 1.81달러로 내려갔다. 낸드 고정가격도 지난해 1∼5월 평균 4.81달러에서 지난해 10월∼올해 2월 평균 4.14달러로 떨어졌다.
다만 이는 단기적인 어려움일 뿐, 장기적으로는 수요 회복이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반도체 업계의 단기적인 어려움에 일희일비하기 보단, 멀리 내다보고 우리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의 이번 결정은 여러 정황 상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은 무너진 반도체 권위를 되찾는 것이 목적인만큼 미국의 이익을 위한 조치일 뿐, 국내 기업에 유리한 조건을 내걸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어불성설이라는 분석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자국에 설비 투자를 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이유는 중국과 손잡지 말라는 것과 미국 내에 반도체 공급망을 확실하게 구축하겠다는 두 가지 목적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기적으로는 중국으로의 공급을 축소하고 종국에는 생산 기점도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상황에서는 기업이 나서기 보단 정부의 외교력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최대한 미국 정부 측에 전달하고 협상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