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한국 야구대표팀이 일본에 참패를 당했다. 객관적 전력상 열세라고는 하지만 투타 모두 압도적으로 밀리며 9점 차 대패를 당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앞서 호주전 패배에 이어 연이은 충격파를 맞은 한국 야구는 국제적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2차전에서 4-13으로 졌다. 7회나 8회 한 점만 더 내줬다면 10점 차까지 벌어져 콜드게임패 수모를 당할 뻔했다.
9일 호주와 1차전에서도 한국은 7-8로 졌다. 져서는 안됐던 호주전 패배로 인해 한국은 2연패에 빠졌고, 자력에 의한 8강 진출은 물건너 갔다. 한국이 남은 중국, 체코전을 다 이기고 호주 등 다른 팀들의 경기 결과에 따라 산술적으로는 8강행 희망이 남아 있다지만 절망적인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하다.
연이틀 벌어진 '도쿄참사'로 야구팬들은 분노하고 허탈감에 빠졌다. 원했던 결과는 얻지 못했으니, 실패를 통해 교훈이라도 얻어야 한다.
한일전에서 승리한 일본 대표팀(위)과 참패한 한국 대표팀의 상반된 모습. /사진=일본야구대표팀 공식 홈페이지, 연합뉴스
가장 우선적으로 얻은 교훈은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현실자각이다.
한국 야구의 세계적 위상은 높았다. 또는 높아 보였다. 그럴 만했다. 과거 아마추어 선수들이 출전하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선전과 호성적은 옛일로 치더라도,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2008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 등 굵직한 대회에서 한국 야구가 이룬 성과는 분명 있었다. WBC에서도 1회 대회 3위(2006년), 2회 대회 준우승(2009년)을 차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모두 십 수년 전 일들이다. 2013년 3회, 2017년 4회 WBC에서는 한국이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이번 5회 대회에서도 탈락 일보 직전이다. 베이징 대회를 끝으로 야구 종목이 제외됐던 올림픽에서 다시 종목 부활을 했던 2020 도쿄 올림픽(2021년 개최)에서도 한국은 4위에 그쳤다. 현역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하지 않은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이 메달도 따내지 못한 것은 대실패였다.
그럼에도 이번 WBC 대회를 준비하면서 한국은 자신감을 보였다. 현역 메이저리거가 2명(김하성, 토미 현수 에드먼) 대표팀에 포함됐고, KBO리그 각 소속팀에서 투타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 위주로 대표 선발을 했다. 또 다른 현역 메이저리거인 류현진과 최지만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대표팀을 꾸렸으면 '기본'은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단 두 경기를 통해 한국대표팀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스트라이크도 제대로 꽂아넣지 못하는 투수들이 계속 마운드에 올랐고,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도 타석에서 제대로 스윙도 못하는 타자들이 즐비했다. 2루타 하나 쳤다고 과도한 세리머니를 하다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져 횡사한 선수도 있었다.
투수들이 힘들어 하면 타선이 더 분발하고 집중력을 발휘해 한 점이라도 더 뽑아주고, 타자들이 잘 못 치면 투수들이 어떻게라도 실점을 막으며 버텨줘야 승산을 높일 수 있다. 한-일전에서 한국은 그러지 못해 초반 3-0 리드를 잡고도 대역전패를 당했고, 일본은 그렇게 해서 역전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선수들 탓만 할 것도 아니다. 이강철 감독의 지도력이나 경기 운영에도 강력한 의문표가 붙었다. 일본전의 경우 투수 기용을 보면, 속된 말로 '얘가 맞으니 쟤를 내고, 쟤가 제구가 안되니 또다른 쟤를 내는' 식으로 보일 정도였다. 투수뿐 아니라 타자나 야수 기용에서도 선수들의 현재 컨디션이나 실전 적응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정상급 투수로 활약했고, 김하성이 빠르게 메이저리그에서 주전급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정후가 예비 메이저리거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몇몇 선수들로 인해 한국 야구의 수준에 대해 착시 현상이 있다는 점도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선수도 많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다가 어떤 팀의 콜도 못 받은 선수도 여럿이었다. KBO리그 각 팀의 에이스를 외국인투수들이 점령해도 크게 문제 의식을 갖지 않고, FA 시장이 열리면 평균보다 잘 한다는 이유로 고액을 안겨 선수들간 연봉 격차가 크게 벌어져도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번 한-일전을 지켜본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이대로라면 향후 10년 혹은 30년이 지나도 한국이 일본 야구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한 경기 참패 때문에 나온, 비판만을 위한 비판은 아닐 것이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