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169석의 힘.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권력이 무섭다. 전국의 농민들이 초과 생산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게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얘기다.
개정안은 지난 23일 민주당의 주도로 찬성 169표(반대 90, 기권 7)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두 차례 중재안을 내며 설득했으나, 국민의힘과의 협상이 고착되자 민주당이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향후 윤석열 대통령은 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초 양곡관리법 이슈에 따라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재의 요구권'을 시사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이에 따라 정국은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특정 법안에 대한 거대여당의 강행 처리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악순환이다.
이러한 양상이 누적될수록 민생 경제 법안의 통과는 요원할 것으로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21일 제12회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요지는 쌀 초과생산량에 대해 정부의 매입을 의무화한 것이다. 재정적으로는 매년 잉여 쌀 매입에 1조원 가량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거대야당은 이 법안을 국내 농민들의 이익 보장을 위해 통과시켰다. 일종의 포퓰리즘 대표 사례로 꼽힐 정도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날 법안 처리는 민주당이 지난해 정기국회부터 마련한 '본회의 직회부' 전략을 처음으로 구사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입법 공식인 '본회의 직회부' 전략은 상임위 단독의결→본회의 직회부→본회의 통과로 완료된다.
민주당 입장에서 입법의 최대 걸림돌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집권여당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의원이다. 김도읍 의원이 법사위원장으로서 제동을 걸지 못하도록 국회법 86조 3항을 이용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조만간 윤 대통령에게 (매입 비용 부담 등 부작용을 우려해)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23일 법안 통과 직후 "법률개정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이번과 같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법안은 당연히 재의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번에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지난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가로막아선 이후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 통과 15일 내로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국회는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 출석 및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통과시켜야 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의하지 않고 새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복안이다. 끝까지 농민들에 대한 포퓰리즘 행보를 가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다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확실한 이상, 이후 정국은 경색되고 거대야당의 입법 강행이 지속될 전망이다. 내년 총선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윤 대통령은 민주당과의 대립각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1년 남짓 남은 입법 권력에 대한민국 정부의 국정 운영이 좌지우지된다는 부정적 평가가 계속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