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배터리 굴기를 억제하고 한국과 일본 배터리 산업을 자국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부 규정 발표에서 한국 배터리 업계 입장을 반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돼 쉽지 않은 길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편집자주>
[미디어펜=조성준 기자]미국이 발표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부 규정은 동아시아 배터리 3국(한국·중국·일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발표된 세부 기준이 한국 업체들의 입장을 대체로 반영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은 육성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평가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IRA와 관련해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세부 지침 규정안을 발표하고 해당 규정을 이달 18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오창 테크노파크 내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모습./사진=LG화학 제공
IRA 세부 규정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관련 내용을 보면 배터리 부품 기준에 양극판·음극판은 포함하고, 구성 재료인 양극 활물질은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또 핵심 광물의 경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한 재료를 미국과 FTA를 맺은 한국에서 가공해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는 IRA에 따른 배터리 광물·부품 요건을 충족하기 수월해졌다.
IRA 규정의 배터리 핵심 광물에 양극재·음극재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는 곧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않은 중국 등에서 추출한 광물이라도 한국에서 가공하면 세액공제 자격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IRA는 북미에서 조립한 전기차에 대해 1년에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다만 탑재된 배터리가 '핵심 광물 조건'을 충족하면 절반(3750달러), 배터리가 '핵심 부품 조건'을 충족하면 나머지 절반을 준다.
핵심 부품 조건은 북미에서 50% 이상 제조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충족에도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핵심 광물 조건은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배터리 원재료의 40% 이상을 추출·가공하면 충족된다.
한국은 미국과 FTA를 맺고 있어 국내에서 생산된 양극재·음극재는 핵심 부품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당분간 세액공제 요건 충족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도 이와 관련해 "이번 세부지침에 따라 미국과 FTA 체결국인 한국에서 양극재·음극재의 구성소재가 가공될 경우 우리 배터리 제조사는 부품·광물요건을 충족하기가 용이해져 미국의 IRA 수혜를 받게 될 것"이라며 "한국이 미국과의 배터리 공급망 협력을 보다 더 강화할 수 있게 돼, 우리 소재기업이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보다 나은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IRA는 중국 배터리 산업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로 해석된다.
이번 세부지침에는 보조금 배제 대상이 되는 '우려국가(FEOC)'에 대한 정의와 규제 방식이 담기지 않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 등 국가의 모든 기업이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우려국가에서 조달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은 IRA 규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배터리에 유리한 지형이 형성된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지만 지난달 28일 미국과 맺은 핵심광물협정 덕분에 FTA 체결국 대우를 받게 됐다. FTA 체결국인 우리나라와 차등이 없어져 파나소닉 등 일본 배터리 업체들도 7500달러 보조금을 모두 받을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이 같은 조치는 향후 미국 전기차 산업에 배터리 수급처를 다양화해 한국 배터리 의존도를 줄이고, 한국 일본의 배터리 경쟁을 촉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디어펜=조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