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기업 저격수로 불리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노동조합의 저승사자로 거듭난 모습이다. 공정위는 앞서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를 제재한데 이어 최근에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를 적발하며 '노조 불법 행위 근절'에 앞장 서고 있다.
또 대기업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을 완화하는 안을 내놓으며 경영계의 해묵은 숙제의 해결사로 나섰다. 다만 이는 정부의 기조에 맞춘 변화여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또다시 기업을 옥죌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어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진단이 나온다.
세종시 정부 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발해 검찰의 고소장에 해당하는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건설기계 대여 사업자단체인 울산지부가 건설사를 상대로 경쟁사업자와 거래를 끊도록 강요한 혐의가 있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는 또 울산지부가 소속 사업자를 상대로 건설기계 임대·배차 관련 사업 활동을 방해한 혐의도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연말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연장 등을 주장하며 집단운송거부에 나서자, 공정거래법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조항을 기반으로 화물연대를 조사한 바 있다.
통상 기업을 조사하던 공정위가 노조의 불법 행위에 앞장서는 것은 정부의 기조에 맞추기 위함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아직도 건설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폭력과 불법을 보고서도 이를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문제는 경영계가 아니라 노조의 불법 행위고, 더 큰 문제는 노조 친화적인 노동법이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노동개혁이라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역대 정부에서도 있어 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전 정부의 경우 '재벌 개혁'을 정부 기조로 삼고 공정위를 '기업 저격수'로 활용해 왔다. 이에 따라 기업집단국이 신설 되며 기업을 옥죄는 풍토가 강해졌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특히 지난 1월 공정위가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을 완화한 것도 큰 변화로 읽혀진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취지로 시행 중인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은 사실상 기업의 손발을 묶는 대표적인 모래주머니로 지적돼 왔다.
해당 대상으로 지정된 기업에는 사익편취 규제와 공시 의무가 부여되고, 갖가지 규제가 따라 붙게 된다. 이로 인해 '기업을 키우지 않고 중소, 중견기업으로 남는 것이 이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현재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은 자산규모 5조 원 이상으로 2009년부터 해당 기준을 유지해왔다. 공정위는 이 기준을 국내총생산(GDP)과 연동하거나 기준 금액을 상향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공시대상기업집단 대상 수는 전보다 크게 줄어든다. 자산 기준액이 7조 원으로 높아진다고 가정했을 때 공시대상기업집단은 기존 76개(지난해 5월 기준)에서 56개로 20개나 감소한다.
공정위의 이 같은 변화는 앞서 언급한 윤 정부의 방침과 궤를 같이한다. 때문에 정권이 바뀔 경우 공정위의 기조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 진정한 친기업으로 변화했다고 하기엔 이르다는 진단이 나온다.
주요 선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이 경쟁과 소비자 후생 향상에 핵심 목적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경제력 집중 억제를 추구하고 있어, 선진국의 공정거래법과는 차이가 있고 매우 예외적인 법 체계라는 비판이 있어 왔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공정위의 변화를 환영한다"면서도 "정부의 기조에 따라 스탠스를 달리하는 조직이 아닌 진정으로 소비자 후생 향상에 집중하는 기관으로 변모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을 규제 대상이 아닌 경제 성장의 동반자라는 인식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