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취임 1주년을 일주일여 앞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9일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태동한 기흥캠퍼스를 방문해 '반도체 초격차' 의지를 다졌다.
지난해 복권 이후 첫 공식 행보 때도 기흥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했던 이 회장이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또 다시 기흥캠퍼스를 찾은 것은 반도체 사업의 의미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찾은 이재용 회장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당시 이재용 회장은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당부한 바 있다.
반도체 산업은 삼성의 주력 사업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체 수출을 책임지는 국가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글로벌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경제·안보동맹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도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첨단 반도체 또는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전면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중국 수출 차단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대중국 수출 규제 국면에서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에 이른바 '칩4 동맹'을 제안하는 등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중요한 시점마다 반도체 사업을 직접 챙기는 것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 격차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반도체 강대국'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병철 창업회장은 '사업으로 나라에 공헌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을 이끌었으며, 이재용 회장 또한 이러한 선대의 유지를 이어 받아,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데 근간이 되는 기술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고 있다.
◇ 이재용, 불확실성 지속에도 '기술'로 정면 돌파
반도체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증가로 전례 없는 위기가 지속되고 있지만, 이재용 회장은 '기술'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경영철학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삼성은 올해 3분기까지 반도체 부문에서 적자가 지속되고 있지만, 이재용 회장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술'뿐 이라는 신념으로,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선행 투자를 주도해 왔다.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귀국길에서 이재용 회장은 "(우리가 할 일은) 첫번째도 기술, 두번째도 기술, 세번째도 기술 같다"고 말하며 기술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올해 3월, 삼성이 용인에 향후 20년간 300조 원을 투입해 첨단 시스템 반도체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초거대 투자 계획은 오너의 명확한 철학과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지난 2022년 8월 19일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과 경영진들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은승 DS부문 CTO, 이 부회장, 경계현 DS부문장, 진교영 삼성종합기술원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회장은 이날도 삼성전자 기흥‧화성 캠퍼스에서 반도체 전략을 점검하고, 같은 날 저녁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고 이건희 선대회장 3주기 추모 음악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재용 회장이 이건희 선대회장 추모 음악회 참석 직전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한 것은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일군 선대회장의 위대한 업적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위기를 넘고자 했던 기업가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의 행보에 대해 "반도체 산업을 태동시킨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유산은 물론, 문화‧예술 인프라 육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자 했던 의지를 계승해 나가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한국경영학회는 전날 이건희 선대회장의 리더십과 경영철학을 되돌아보기 위해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 반도체, 이병철-이건희 과감한 결단으로 육성
반도체 사업은 이병철 창업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등 선대의 과감한 결단과 불굴의 집념으로 육성한 국가 핵심 사업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사장, 맨 왼쪽)이 지난 2011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경쟁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해 참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병철 창업회장은 73세의 나이에 미국 출장길에 올라 국가적 도약을 위해서는 반드시 첨단 산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는 내용의 역사적인 '도쿄 선언'을 했다.
이건희 회장은 한국이 첨단산업의 불모지이던 1970년대에 사재를 출연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는 등 반도체 산업이 향후 국가 경제를 지탱할 핵심 사업이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 회사 안팎에서는 반도체 사업에 대해 '말도 안된다'며 비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1983년 64K D램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자체 개발하고, 1988년부터는 반도체 사업에서 흑자가 나기 시작하면서 이건희 선대회장의 혜안이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83년 삼성 반도체가 처음 걸음마를 뗀 기흥캠퍼스는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1992년 D램 시장 1위 달성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 달성 등 역사에 남을 성과를 이뤄낸 반도체 성공 신화의 산실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