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건설사 지형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외형 확장으로 대형건설사 반열에 오르는가 하면 사세가 기울면서 오히려 뒷걸음치는 등 지각변동이 심했다. 이에 미디어펜은 시공능력평가를 비롯해 재무상태와 사업구조 등을 토대로 2023년 11월 현시점 '중견건설사 4인방'(DL건설·대방건설·중흥토건·태영건설)을 제시하고, 각사들이 새롭게 부상한 저력을 내밀하게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新중견4인방①-DL건설]출범 4년 만에 증명한 독보적 존재감
[미디어펜=성동규 기자]올해로 출범 4년 차를 맞은 DL건설이 '중견건설사 T0P4'에 자리매김했다. 2023년 DL건설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13위다. 일각에서는 10대 건설사 진입도 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건설경기 침체 위기 직격탄 맞은 '삼호·고려개발'
DL건설의 전신인 삼호와 고려개발이 대림산업(현 DL이앤씨)에 인수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막대한 부동산을 바탕으로 튼튼한 자산구조를 자랑하던 삼호는 1970∼1980년대 중동에서는 건설 붐이 일자 해외공사 경험이 없었음에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어려움을 겪었다. 연이은 해외사업 실패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삼호는 자금 조달 능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1984년 8월 대림산업이 삼호를 위탁경영하다가 1986년 5월 정부의 산업합리화 조처로 완전히 인수했다.
‘해외건설면허 1호’ 타이틀을 자랑하는 고려개발도 비슷하다. 1980년대 후반 유가 하락으로 해외 건설경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자 어려움에 빠졌다. 1987년 2월 1800억원이 넘는 빚을 지면서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그해 4월 대림산업이 인수를 결정했다.
이후 고려개발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지만 꾸준히 현금이 유입되는 관급토목공사 부문에 주력했다. 이와 같은 노력은 빛을 발했다. 1989년 흑자전환을 달성한 이후 9년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다 1998년 9월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삼호는 중소형 주택공급에 주력하며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터지자 부동산 경기 침체와 주택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 지연으로 유동성 압박을 받았다. 이듬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에 휩쓸려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삼호가 위기에 처하며 토목 전문 업체로 출발한 고려개발이 주택사업으로 그 영역을 넓혔지만 금융위기로 사업계획에 차질을 빚으며 고려개발 마저 2011년 11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2014년 주택시장에 다시 훈풍이 불었고 삼호는 빠르게 현금을 쌓을 수 있었다. 2016년 말에는 채권단 결의로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공적 자금지원이나 인수합병(M&A) 없이 '자력 회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고려개발도 다소 더디기는 했으나 정상화 노력을 지속했다. 골칫덩이였던 부실사업장들을 정리하면서 2017년 적자 탈출에 성공했다. 2019년까지 3년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마침내 2019년 11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곽수윤 DL건설 대표이사 약력 : 1968년생. 서울대 건축학과 학사. 1992년 대림산업(현 DL이앤씨) 입사. 2015년 대림산업 주택기획담당 상무. 2018년 고려개발 대표이사 전무. 2020년 대림건설 경영혁신본부장. 2021년 DL건설 주택건축사업본부장. 2022년 DL건설 대표이사 부사장(현)/사진=DL건설 제공
◆절체절명 위기 극복…'대림건설'로 재탄생
삼호와 고려개발이 정상화되자 합병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건설시장 환경변화에 선제 대응하고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디벨로퍼 사업을 위해 합병이 필요하다는 계산이었다.
대림산업의 품에 들어온 지 30여 년 만인 2020년 3월 삼호가 고려개발을 흡수합병했다. 합병회사의 사명은 대림건설로 결정했다.
합병 이후 불과 몇 개월 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시공능력평가에서 17위에 안착했다. 2019년 시공순위는 삼호가 30위, 고려개발은 54위로 단숨에 수십 계단을 뛰어오른 기염을 토한 것이다.
2021년 1월 대림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그룹명도 DL로 변경했다. 대림건설의 사명 역시 DL건설로 변경됐다. 이즈음 모회사인 DL이앤씨(옛 대림산업)와 합병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경영 전략이 다르고 이해욱 회장의 그룹 지배력 확대에도 실익이 적다고 분석했다.
DL이앤씨는 건설사업 부문과 인적분할한 이후 수주 중심 전통적 건설사에서 벗어나 디벨로퍼 중심 사업자로 변모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반대로 DL건설은 합병 후 국내 도급 공사에 집중했다. 실제 DL건설은 2021년 주택사업을 원동력으로 시평 순위 12위를 차지했다.
주택건축 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웃돈다. DL건설의 주택건축 부문의 매출액은 합병 직전 해인 2019년 1조782억원에서 2020년 1조3914억원, 2021년 1조5302억원, 지난해 1조5506억원으로 계속 증가했다.
착공 물량 또한 늘었다. 2019년 5385가구, 2020년 7329가구로 증가하다 2021년 1735가구로 주춤했지만 지난해 1만2529가구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직전 3개년 평균 착공 물량인 4800가구보다 약 2.5배 많은 물량이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단지 공사 기간이 약 2~3년 걸리다 보니 착공 물량 증가로 인한 매출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분양률과 무관하게 공사비가 확보되는 사업 비중이 높아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DL건설은 사업 대부분 기성불로 진행하는 덕분이다. 시행사에서 PF대출을 통해 공사비를 모두 확보한 뒤 착공하는 방식이다. 공사 진행률에 따라 시공사에 공사비를 지급해 안정적으로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합병 이후 최대실적 달성…모회사 편입 기대감↑
이미 올해 3분기까지 주택건축 매출은 1조7079억원으로 합병 이후 최대실적을 경신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조2663억원)과 비교해 34.87%(4416억원) 증가했다. 다만 수익성은 악화했다. 영업이익이 510억원에서 491억원으로 3.72%(19억원) 감소했다.
건설업계 전반을 덮친 원자재가격 급등 여파로 매출원가율이 개선이 예상보다 더뎌지고 있어서다. DL건설의 원가율은 △ 2020년 84.78% △2021년 84.84% △지난해 91.95% △올해(3분기 기준) 93.61% 등으로 가중되고 있다.
문제는 수익성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자금조달 비용 상승, 여전한 원자잿값 상승 여파 등 다양한 악재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DL건설은 지난달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DL이앤씨가 DL건설과 포괄적 주식교환 계획을 발표했다. 포괄적 교환이 실행되면 DL건설은 DL이앤씨의 100% 자회사가 되고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게 된다. 내달 말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내년 3월 DL건설의 상장폐지로 주식교환은 마무리될 예정이다.
현재 침체한 건설 경기와 향후 암울한 전망 등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DL건설이 잠재부실 현실화 가능성 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DL이앤씨와 보조를 맞춰 고부가가치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DL건설은 2021년 하반기 주택건축사업본부내 디벨로퍼팀을 구축하고 인력 충원을 마무리했다. DL건설이 자체 개발사업 등을 위해 확보한 보유 용지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 372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929억원으로 2배 넘게 늘어났다.
기존 주력사업인 단순도급을 넘어 DL건설은 시행사와 부동산 개발사업에 공동투자가 가능할 정도로 넉넉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3분기 기준)은 5913억원에 달한다.
반대로 총 차입금은 2714억원에 그쳤다. 총 차입금의 두 배 이상 현금을 쥐고 있는 셈이다. 부채비율은 84.9%로 100% 미만 부채비율을 기록하며 업계 최고 수준 재무건전성을 유지 중이다. 실질적 무차입 기조를 이어가고 있어 유동성 여력이 충분한 셈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단기간 '중견건설사 T0P4'로 입지를 공고히 굳힌 DL건설"이라며 "현재의 위기를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성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