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증권업계에서 인공지능(AI) 활용도가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AI 애널리스트’가 업계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매도 의견 보고서가 거의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는 현 상황 속에서 AI 애널리스트가 투입된다면 보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업계에서 AI 애널리스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히 AI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보다는 깊은 의미가 깔려있다.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국내 증권업계에서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가 AI라는 새로운 모멘텀을 계기로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존재한다.
한국투자증권의 AI 애널리스트 '한지아'의 모습./사진=한투 유튜브채널 화면 캡쳐
국내 증시 상장사들을 분석하는 한국 증권사들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로는 ‘매도 리포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 첫손에 꼽힌다. 오로지 ‘매수’ 일색의 보고서들로 도배되다시피 하다보니 일반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 말까지 매도 의견을 단 1건도 내지 않은 국내 증권사가 무려 25곳에 달하는 게 우리나라 증권업계의 현실이다.
이를 반드시 증권사‧애널리스트들의 직업윤리나 정직성, 정확성 등의 문제로만 치환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분석(증권사)-피분석(상장사) 주체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깝고, 어떤 식으로든 둘이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한국적 현실’이 배경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작심하고 매도 리포트를 발간한다 해도 해당 애널리스트에 대해 여러 방향에서 직‧간접적인 공격이 가해질 경우 정상적인 업무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국내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 대신 ‘중립’이라는 표현으로 에두르거나, 혹은 매수 의견을 유지하되 목표주가를 낮추는 식으로 투자자들에게 사인을 보내곤 한다.
최근 들어서 이러한 분위기에 대한 거듭된 비판으로 다소나마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지난 21일 하나증권 소속 한 연구원은 KT에 대해 분석하면서 '이걸 굳이 왜 사요?'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눈길을 끌었다.
하나증권은 지난 여름 에코프로에 대한 과열 움직임이 있었을 때에도 거의 ‘팬덤’처럼 형성된 일부 투자자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매도 의견 보고서를 발간해 해당 연구원이 물리적 위협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하나증권은 지난 가을 진행한 투자설명회에서는 ‘배터리 아저씨’로 유명한 박순혁 작가를 행사에 초청해 2차전지 관련 강연을 추진했다. 일면 단순해 보이는 이 문제가 얼마나 다층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국내 증권사 한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이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게 현실”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사들은 최근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해 일종의 실험에 돌입하려는 모습이다. 바로 ‘AI 애널리스트’의 비중을 높여나간다는 대안이다. AI가 단순히 데이터 처리에 능하고 속도가 빠르다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이미 대형사들은 움직이고 있다. 일례로 작년 말 한국투자증권은 AI 애널리스트 한지아를 선보였다. 한국투자증권 신입사원들의 얼굴을 학습해 만들어진 이 애널리스트는 한투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내년 출시를 목표로 AI 관련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KB증권 최근 IT본부 내 '신기술팀'을 신설해 비슷한 업무를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이 AI 애널리스트를 투입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강력한 매도 의견을 개진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판’은 깔리고 있는 셈이다.
국내 증권사 다른 관계자는 “AI의 경우 정량적 분석에 특화돼 있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언급하면서 “증권사들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고 예상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