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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현주소①] 캐즘에 포비아까지…혹독한 보릿고개

2024-08-13 16:21 | 김연지 기자 | helloyeon610@gmail.com
최근 몇 년 간 자동차 업계 내 화두는 '전동화'였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수요와 성장이 둔화되며 정체기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최근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까지 생겨났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의무화되면서 전동화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 과제로 여겨지지만, 정체기를 맞은 시장은 각 기업의 극복 과제로 꼽힌다. 미디어펜은 전동화 전환 현주소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연지 기자]최근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면서 전기차를 기피하는 '포비아(공포증)'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침체기)에 포비아까지 더해져 전동화 전환 속도는 다소 침체 구간을 맞은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수요 둔화 현상은 점차 심화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3.4% 감소한 8만613대로 집계됐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 둔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번 화재로 전기차 기피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면서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기차 수요 둔화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기차 계약 줄취소…중고 EV 매물 폭증

최근 이어지는 전기차 화재로 인해 전기차 계약 취소가 줄을 잇고 있다. 아직 취소를 하지 않았지만 불안감에 취소를 고민하는 소비자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한 딜러는 "전기차 취소 문의 전화가 엄청나게 온다. 화재가 난 배터리를 탑재한 차가 아니라고 설명해도 고객들은 취소하겠다는 의사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소유주들도 불안에 떠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달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SUV(스포츠유틸리티차) EQS를 인도받은 A씨(36세·남성)는 "같은 브랜드 전기차가 불이 났다고 하니까 불안한 마음이다. 다른 배터리가 탑재됐다고는 하지만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해도 되는 건지 마음이 불편하다"며 "마음 같아서는 환불이 된다면 환불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또 다른 전기차 소유주 B씨(36세·여성)는 "3년째 전기차를 타고 있고, 너무 만족하고 있었는데 막상 뉴스에 나온 화재 사고를 보니 좀 무섭다. 그래도 다른 브랜드이기도 하고, 문제가 된 배터리가 아니라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면서도 "전기차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게 돼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에서는 전기차 매물이 크게 증가했다. 인천 화재 이후 전기차 소유주들이 불안감에 전기차를 대거 매물로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중고차 업체들은 전기차 매입을 중단했고, 전기차를 구매하겠다는 소비자의 발걸음도 거의 끊겼다.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에 따르면 인천에서 벤츠 전기차 차량 화재가 발생한 지난 1일 이후 7일간 '내차 팔기 홈 서비스'에 등록된 전기차 접수량은 직전 주(지난달 25∼31일) 대비 184%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접수된 중고 전기차 매물 중 화재가 난 EQ 시리즈 모델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로 직전 주(0건) 대비 크게 늘었다.

중고차 온라인 판매 플랫폼 기업 엔카닷컴에 지난 1∼8일 접수된 '내 차 팔기' 매물 중 EQE 모델(EQE V295·EQE SUV X294)은 총 13대로, 지난달 한 달간 접수된 물량(5대) 2배가 넘는 수준이다.

◆ 전동화는 필연…'트럼프 리스크' 선제적 대응 필요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완성차업계의 완전 전동화에는 제동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전동화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최근의 전기차 화재로 인한 포비아를 비롯해 충전 인프라 부족 등으로 보릿고개가 더 길어질 전망이다.

전동화에 발목을 잡는 요소는 또 있다.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다. 미국 대선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등 전기차 친화 정책의 폐기를 내걸며 '미국 우선주의' 정책 강화를 예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꾸준히 친환경에너지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IRA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재선에 성공하면 기존의 전기차 우호 정책 일부를 폐지하고, 중국산에 대한 관세를 최대 200%까지 인상하겠다고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기차를 사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살 수 있어야 하지만, 정부가 자동차 시장을 형성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전기차의 미래는 2024년 미국 대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IRA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IRA 보조금의 완전한 철폐는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을 차지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때문에 완전 폐지보다는 축소나 일부 개정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포함해 IRA 수정 및 폐기가 현실화하면 한국 기업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한국 경제계의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트럼프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IRA 폐지를 이야기하지만 폐지보다는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선제적으로 플랜B, 플랜C를 만들어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기업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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