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완성차 업계에 하투(夏鬪·여름철 노동계 투쟁)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그간 완성차 업계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은 현대자동차의 임단협 결과에 영향을 받아왔으나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국내 5대 완성차 업체 중 현대차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사가 모두 임단협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일부는 이미 파업에 들어갔고,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큰 곳도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최근 제7차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측은 현대차와 유사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제안했지만 노조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현대차 노사는 최대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키로 합의하면서 6년 연속 파업 없이 단체교섭을 완전히 마무리했다. 현대차 노사는 △기본급 11만2000원(호봉 승급분 포함) 인상 △성과금 500%+1800만 원 △주식 25주 지급 등에 합의했다.
최근 파업권을 확보한 기아 노조가 평생사원 제도, 고용세습 조항 등을 두고 사측과 샅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기아 양재 사옥./사진=기아 제공
기아는 올해 임금 협상에 더해 단체협약까지 진행하는 데다 평생사원 제도와 고용세습 조항 등 큰 쟁점을 두고 노사가 샅바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기아는 기본급 11만2000원 인상(호봉 승급분 포함)과 성과급 400%+1300만 원(재래 상품권 20만 원 포함)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임금 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노조 측은 사측 제시안에 임금 인상 외 단체협약 및 별도 요구안에 대한 내용이 제대로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2차 제시안을 요구하고 있다.
기아 노조는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영업이익의 2.4% 특별 성과금 지급, 퇴직자 차량 평생 할인 제도 복원, 정년 연장과 노동 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고 있다.
기아 노조가 복원을 요구하고 있는 퇴직자 차량 평생 할인 제도는 현직 직원 뿐 아니라 장기근속 퇴직자에게도 평생 2년에 한 번씩 신차를 30%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제도였다. 지난 2022년 사측이 폐지를 요청했고, 노사 간 대립 끝에 평생 할인 제도 대상 연령을 75세까지로 제한하고, 3년 주기로 25%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데 합의한 바 있다.
기아 노조는 형제 회사인 현대차가 퇴직자 차량 평생 할인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다시 제도를 복원해 줄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사측의 요구로 혜택이 줄어든 만큼 회사가 이를 다시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현재 기아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중지 결정, 파업 찬반투표 찬성 가결로 합법적으로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 협상이 결렬돼 기아 노조가 실제 파업에 돌입할 경우 지난 2020년 이후 4년 만의 파업이다. 기아는 오는 30일 제 8차 본교섭을 앞두고 있다.
한국GM은 지난달부터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사진은 한국GM CI./사진=한국GM
한국GM 노조는 지난달부터 부분 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앞서 노사가 기본급 10만1000원 인상, 일시금 및 성과급 1500만 원 지급 등을 골자로 한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52% 반대 의견으로 부결됐다.
파업이 이어지면서 회사 생산량도 타격을 받고 있으며, 협력업체까지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한국GM의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52.6% 급감한 1만9885대에 그쳤다.
부품 협력사 모임인 '한국GM 협신회'는 호소문을 내고 파업 중단을 요청했다. 이어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도 한국GM의 신속한 임단협 타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KAIA는 한국GM 협력업체들의 모임인 '한국GM 협신회'를 비롯해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한국자동차연구원 등 11개 자동차산업 관련 기관·단체의 연합체다.
KAIA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임단협 과정에서 노조의 파업과 잔업 거부로 상당한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완성차 생산이 줄어 경영환경이 열악한 한국GM 협력업체들은 매출 감소에 따른 현금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KG모빌리티(KGM)는 14년 연속 무분규 협상 기록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KGM 노조는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찬성률 50% 미만으로 부결됐다. 임금인상률이 조합원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KGM 노조는 기본급 14만3000원 인상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코리아 역시 노사 간 갈등이 진행 중이다. 노조는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전년 대비 급감한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노사의 입장이 극명히 갈리고 있는 만큼 임단협 타결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면서도 "이미 파업을 진행 중인 곳도 있지만, 추석 전에는 원만히 합의점을 찾아 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노사 모두 피로도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