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한동안 한국 대중문화를 최전선에서 이끌던 영화계가 최근 양적·질적 침체에 빠진 데에는 넷플릭스 같은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큰 변수로 작용했다. 양질의 콘텐츠를 방안에서 즐길 수 있게 되면서 굳이 따로 티켓값을 내고 극장에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OTT가 타격을 준 상황은 물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미국 영화계는 우리보단 발빠르게 대응에 나섰다는 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데이미언 셔젤 등 최근 많은 유명감독들은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OTT 시대에서 영화의 의미란 뭔지, 왜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부터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 감독들의 최근작인 '파벨만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바빌론' 등이 그 고민의 흔적들이다. 이 작품들이 각 감독의 대표작이 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시대에 필요한 고민을 담아내긴 했다. 이 질문들이 관객과 공명해서 어떤 식으로든 결실을 낸다면 할리우드는 OTT와 전혀 다른 영역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같은 시각 한국은 어떻게 하면 정부가 '토종 OTT'를 지원할 수 있을지, 혹은 어떻게 하면 과거 스크린쿼터제 같은 영화계 지원책을 하나 더 받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질문의 차원이나 출발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영화계를 비난하겠다는 의도는 없다. 뭐든지 관(官)이 개입해야만 해결이 나곤 했던 과거의 경험을 그들 나름대로 추종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영화가 재미없어지고 가격마저 비싸지자 관객들은 서슴없이 외국 OTT를 택했다. 똑같은 함수를 주식시장에도 대입시킬 수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정부의 개입에 대해서라면 한국 금융계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한국의 시중은행, 넓게 보면 증권사까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소위 '관치금융'이다. 미국에선 금융사 수장들이 경제 분야 장관으로 뽑혀나가곤 하지만 한국은 방향이 반대다. 관료 출신이 금융지주 수장으로 넘어온다. 그 뿐인가? 거래소나 예탁결제원 등의 이사장·사장 자리를 정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문제에 대해선 때마다 기사를 쓰는 것도 이젠 지쳐버렸다.
진짜 하고 싶은 얘긴 여기부터다. 관치금융이라면 '관리'라도 제대로 돼야 맞는 것 아닌가? 관의 힘이 그렇게 세다면 룰에서 어긋난 행동을 한 이들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가 강력하기라도 해야 억울함이 덜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허나 현실은 언제나 반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규제의 역설이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은행 직원들의 횡령 단위는 이미 기본이 수십억원 대다. 대통령과 금융감독원 수장이 검사 출신인데도 주가 조작범은 날뛰고, 잡히면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며 언론 인터뷰에 나서는 게 2024년 한국의 주식시장이다. 죄인들은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한국 주식시장의 문제는 그 누구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돼버렸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중요한 정보는 줄줄 새고 있다고 일단 가정하고 투자에 나서야 뒤통수를 맞지 않는다는 게 개미들의 기본 상식이다.
공시 이전에 주가가 먼저 움직이는 경우는 너무 흔해서 이제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정보를 미리 알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을 탓할 뿐이다. 이 수많은 자책과 한탄의 가스라이팅이야말로 우리 시장을 관통하는 주요 정서다. 공매도도 금투세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이 신뢰 문제에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가 재미없어지고 가격마저 비싸지자 관객들은 서슴없이 외국 OTT를 택했다. 똑같은 함수를 주식시장에도 대입할 수 있다. 한국 주식시장이 망가지고 믿음이 깨지자 투자자들은 서슴없이 미국 주식을 택하고 있다.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