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유태경 기자]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하기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개최를 사흘 앞둔 가운데,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시민사회 연대체인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플뿌리연대)는 지난 20일 한국 정부가 플라스틱 내 유해 화학물질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등 협상에 강력히 대응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플뿌리연대는 "플라스틱 협약에 엄격한 유해물질 관리 방안을 포함하고 유해물질 유해성 기반 분류 및 화학물질군 단위 관리와 플라스틱 생산 감축 강력 지지, 플라스틱 산업 재편과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 협약을 성안하기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는 오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환경부는 이번 위원회에 전 세계 170여개 유엔회원국 정부 대표단과 31개 국제기구, 산업계·시민단체·학계 등 이해관계자 약 35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플라스틱 원료 추출부터 생산, 사용, 폐기 등 생애 전 주기를 국제적으로 구속력 있게 규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 세계 175개 유엔 회원국은 지난 2022년 개최된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 5.2)에서 법적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올해 말까지 성안하기로 결의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우루과이와 프랑스, 케냐, 캐나다에서 총 네 차례 회의를 마쳤다. 하지만 석유화학 산업계와 산유국 반발 등으로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마지막 회차인 이번 회의에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플라스틱 내 유해물질 의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정부 대표단과 전문가 그룹은 지난 제4차 위원회와 제5차 위원회 사이 회기 간 작업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중요한 의제로 다룬 바 있다.
지난달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재활용보다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플라스틱 내 유해물질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한 입장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플뿌리연대 참여단체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올해 자체 실시한 바이오 모니터링(인체 시료 연구)을 통해 플라스틱 내 유해물질 노출에 대한 연구를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이 연구에는 약 150명의 어린이와 일반 시민, 환경 인플루언서가 참여했다.
최인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바이오 모니터링센터 팀장은 "연구에 참여한 모든 시민들의 소변과 혈액에서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와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며 "이는 미국과 유럽 등 해외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제품 규제 대상 물질 중 하나인 DEHP phthalate와 비스(2-에틸헥실)프탈레이트)는 어린이 소변 중 대사체 농도는 50.7ug/g-creatinine으로, 미국 어린이의 농도인 32.1ug/g-creatinine보다 1.6배 더 높았다.
성인과 어린이 혈액 중 과불화화합물 중 과불화옥탄산(PFOA) 농도는 각각 7.26, 4.52ug/L였다. 이는 미국 일반인 농도 1.45ug/L, 유럽연합 청소년 농도 0.94ug/L와 비교했을 때 5배 정도 높은 수치다.
플라스틱에 의도치 않게 노출되는 화학물질 중 유해성이 알려진 환경호르몬은 암, 발달 및 생식 독성, 성 조숙증, 비만 및 당뇨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최 팀장은 "주요한 유해물질 노출원인 플라스틱의 강력한 규제와 생산 감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플뿌리연대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마지막 협상인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개최국으로서 한국 정부 참여와 역할이 중요하다"며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문제인 플라스틱 유해물질에의 노출 위험은 개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통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 심각성을 인식하고, 플라스틱 전 주기를 다루는 효과적이고 이행가능한 국제협약이 조속히 성안돼야 한다는 입장 하에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와 함께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주최국으로서 협약 성안에 대한 각국의 정치적 의지를 결집하고,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내외 인식을 제고하고자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행사 첫날 외교부는 부산광역시와 공동으로 각국 정부 대표단을 초청해 환영리셉션을 개최한다. 환경부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플라스틱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주제로 포럼·세미나와 홍보·전시회 등 행사를 진행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플라스틱 협약은 유엔기후변화협약 이후 최대 다자환경협약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협상회의에 대한 국제사회 관심이 큰 만큼, 우리 정부는 성공적인 회의 개최를 통해 지구환경과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오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제규범 수립에 선도적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