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상품이 나온 건 아닌데…일단 예약부터 하시겠어요?"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ISA 열풍으로 금융업계가 들썩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준비는 아직 미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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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ISA 열풍으로 금융 업계가 들썩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준비는 아직 미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부가 '국민재산 늘리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내달 14일부터 도입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각 은행과 증권사들이 앞 다퉈 '이벤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실질적인 채비가 되기도 전에 '묻지마 사전예약' 경쟁으로 시장이 과열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가 지난 17일 실제 증권사, 은행 등 금융회사를 방문해 창구 문의를 해보니 직원들도 ISA 출시 날짜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ISA에 대한 설명보다 이벤트 상품에 대한 설명이 더 길었다. 일단 사전예약을 유도하거나 '연락처를 남기면 상품 출시 이후 안내하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ISA에 대한 업체 직원들의 이해도도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이벤트부터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본래 증권사들을 통해서만 가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던 일임형ISA를 금융당국이 은행들에게도 전격 개방함으로써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손꼽힌다.
지난 15일 금융위원회(위원장 임종룡)는 '국민재산을 늘리기 위한 ISA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일임형ISA 계좌를 은행들도 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운용지시 없이도 가입이 가능하고 전문가에 의해 표준화돼 있는 일임형ISA의 장점을 은행 고객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은행들은 즉각 화려한 상품을 내건 'ISA 이벤트 전쟁'에 돌입했다. 신한은행은 ISA 가입예약 고객 중 당첨자에게 아반떼를 증정하는 이벤트에 돌입했다. 다음 달부터 실제 판촉이 시작되면 트롬 세탁기, 로봇청소기, 백화점 상품권 등을 내걸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갈 예정이다.
농협은행 또한 ISA 예약고객 중 당첨자에게 200만 원 상당의 골드바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우리은행은 하와이 여행권, KEB하나은행은 1000만 원 상당의 국내외 가족 여행권을 내걸 예정이다.
상품 이벤트가 중심인 은행들과 달리 증권사들은 '혜택'을 위주로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대신증권은 ISA 투자자에게 연 3.5% 금리의 특판RP(고금리 환매조건부채권)를 제공하기로 했다. 대우증권 또한 다음달 13일까지 ISA계좌를 사전 예약하는 고객 선착순 1만5000명에게 연 5% 금리의 RP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한다.
NH투자증권은 ISA 상담 예약신청 후 상담을 완료한 고객 선착순 2000명에게 연 수익률 3.5%, 91일물의 특판 RP 가입 우선권을 제공한다. 하나금융투자도 사전신청 고객들에게 연 4% RP에 20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키움증권은 예약 투자자 중 선착순 2000명에게 가입금액의 1%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증권과 현대증권은 전화로 ISA 상담‧가입을 한 고객들에게 음료 기프티콘을 지급한다.
ISA에 대한 은행과 증권사들의 판촉이 유독 공격적인 이유는 ISA가 '1인 1계좌' 원칙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입이 가능한 투자자도 일정 소득이 있는 근로소득자와 사업소득자, 농어민 등으로 제한돼 있어 '레드 오션' 성격도 짙다.
화려한 이벤트와 함께 ISA 전쟁이 시작된 셈이지만 구체적인 준비 상황에는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특히 일임형 투자 상품을 운영해 본 일이 없는 은행들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ISA 출시 이후의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현재 은행들 중에서 일임형ISA와 관련한 조직을 갖춘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은행들이 겉으로는 증권사와의 판촉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증권사의 '일임형 상품 운영 노하우'를 전수 받기 위해 부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문제는 ISA가 '만능'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원금손실이나 투자실패의 위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고위험 상품이라는 데 있다.
펀드, ELS, 예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하나의 통장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편리성과 최대 25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을 갖춘 것은 맞지만, 증권사와 은행마다 투자운용과 수익률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성급한 사전예약은 금물이라는 지적이다.
여러 매체에서 아무리 많은 혜택을 홍보한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ISA 상품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벤트 상품만 보고 섣부르게 사전예약을 했다가는 본인과 맞지 않은 상품에 가입돼 난처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ISA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ISA에 관심을 갖기에 지금은 적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속내를 드러내면서 "화려한 이벤트에 현혹되기보다 내달 구체적인 상품이 출시된 이후 세부사항을 꼼꼼하게 살핀 뒤 가입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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