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노조에 쏠린 노동법·근로시간 강제단축으로 악화
규제샌드박스, 임시 사업허가로 끝날 우려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비롯해 규제 정부입증책임제, 적극행정 강화 등 규제혁파에 나섰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발목을 잡는 진짜 규제들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11일 정부는 타지역 종량제봉투 사용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민생불편 규제혁신 50건을 확정했지만, 국민생활과 밀접한 민생규제 외에 기업의 일자리 창출·경영권·재산권을 압박하는 더 큰 규제들은 빗장이 채워진 그대로다.

우선 빅데이터 및 핀테크(금융기술) 활성화를 위한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일명 개망신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에 걸려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어떤 정보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빅데이터는 75%가 개인정보이고, 핀테크의 기반 또한 빅데이터 및 금융기관 등의 신용정보로 구성되어 있어 결국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걸린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파기 등 단계별로 처리원칙을 정해 규율하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분야 고유사항들을 규정하는 신용정보법이 기업들의 차별적인 마케팅 등 자유로운 활용을 막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의 경우 단말기 접근동의 및 유출통지 의무항목 등 가장 엄격하게 규율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산자위·과기방통위 등 소관 상임위원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를 일부 해제해 개정하는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지만 아직 상임위 심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데이터경제 활성화를 천명했고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유예) 1호로 유전자 데이터분석을 2년간 시범실시할 수 있게 됐지만, 정작 개인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크다.

경영권에 지장을 줘 기업 발목을 잡는 또다른 규제는 섀도보팅(주주총회에 참석 않은 주주들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정족수 미달로 인한 총회 무산을 막는 제도) 폐지와 3%룰이다.

올해 섀도보팅 폐지로 인해 기업들은 상법에서 정한 의결 정족수를 채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대거 부결 사태가 발생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정례보고를 받고 있다./사진=청와대

한국상장사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정기 주주총회를 연 결산법인 1997개사 중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이 부결된 곳은 지난해(76개사)보다 대폭 증가한 188개사로 드러났다. 부결 안건 총 238건 중 가장 많은 149건은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었고 이는 지난해 56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감사 선임의 경우 감사선임 시 최대주주 지분율을 최대 3%대로 제한하는 3%룰이 기업들이 감사를 선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상장사협회는 내년 정기주총에서 올해보다 더 늘어나 상장사 230곳 안건이 부결되고 감사 선임을 못하는 기업이 238곳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지막으로는 기업의 앞날을 장기적으로 불투명하게 만드는 거시적 규제환경이다.

규모가 클수록 상속세를 가중시키는 기존 상속세제를 비롯해 거대 강성노조 힘에 완전히 쏠린 노동관련법, 주 52시간과 최저임금 인상 등 근로시간 및 인건비에 대한 강제 규제가 경영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정부가 규제혁파의 히든카드로 내세운 규제 샌드박스 또한 이러한 법제도 환경이 존속되는 한 임시 사업허가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RFID 등 IT분야 스타트업 대표이사인 백모씨는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샌드박스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관련법 및 규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결국 2~3년 내로 한계에 맞부닥칠 것"이라며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강행으로 기존 기업들도 인건비 관리가 곤혹스러운데 우리와 같은 스타트업은 사업을 지속하기 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이달 11일부터 한달간 매주 규제혁신 안건을 논의할 방침이지만, 현장의 호소가 제대로 전달되어 기업들을 실제로 어렵게 하는 규제들이 풀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