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음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상황이다. 강대국과 글로벌 리더, 기업들은 기후 재앙을 피하자는 대원칙 속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문제는 세상이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점이다. 기업 전략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한국 역시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표완수)의 지원으로 제작된 이번 연재보도의 목적은 팩트체크를 통해 탄소중립의 현실을 짚어보고, 도약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기후 대응에 선도적인 국내·해외 사례를 담고자 했다. 미디어펜은 국내 사례에서 울산·포항·부산·제주 지역을 방문했고, 해외의 경우 스웨덴·스위스·프랑스에 코로나19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가 직접 찾아가 각국의 탄소제로 환경정책 성과와 현지 목소리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편집자주]
[시리즈 싣는 순서]
⑪'기후 악당' 한국?…맞고 틀린 것은
[서울·경기·인천·대전·세종·강원·포항·울산·부산·제주=미디어펜 김규태 기자]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으로 불린다. 지난 2009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선언했지만 지키지 못해서 그렇다. 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지만 국제사회 기준에 따른 감축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영국의 환경싱크탱크 엠버가 지난 11월 11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의 2015~2020년간 연평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3.81t)가 호주(5.35t)에 이어 2위로 등극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녹록치 않다. 당장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MA), 일명 '탄소국경세'를 꺼내들었다.
EU가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 산업부문 탄소배출량 1위인 한국의 부담이 가장 커질 전망이다. EU는 오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시범기간동안 탄소배출량 신고를 받고, 2026년부터 비용을 부과할 방침이다.
이에 대한 한국의 1차적 대응은 탄소배출권거래제(ETS)다. 이를 통해 유예기간인 2023년부터 2025년까지 EU와 협상할 계획이다.
본보는 이번 마지막 연재 기사를 통해 한국이 실제로 '기후 악당' 맞는지, 또는 아닌지 우리나라를 겨냥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하나씩 다루어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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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일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기후 악당, '흑 아니면 백' 이분법적 시각?
지난 10월 31일부터 2주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최근 화제였다. 각국이 탄소감축 목표치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개최국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11월 1일 열린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기후변화 지구종말 시계는 자정 1분 전"이라고 말해 각광을 받았다.
그는 이튿날 런던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 제트기를 탔는데, 이에 환경단체들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트기를 탔다는 이유로 시위에 나서 "존슨 총리는 기후 악당"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기후 악당이라는 용어가 사실상 '손바닥 뒤집기'나 다름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개인의 주관이나 선호도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를 받게 된다.
어느 캠페인이나 양면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환경보호에 앞장선 단체들이 자신들의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탄소 배출하는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일반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자신의 텀블러로 받아 마신다고 하더라도 원두 생산과 배송 과정에서 탄소 500g이 발생한다. 일례로 스타벅스가 아무리 일회용품 용기 이용을 자제하고 노력하더라도 탄소 배출을 막을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커피와 관련된 모든 생산자, 유통기업, 소비자가 '기후 악당'일까?
살아 숨쉬는 과정에서 사람은 탄소를 배출한다.
서울시민이 하루종일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일회용품을 쓰지 않더라도 하루 10kg 안팎의 탄소를 배출한다. 이는 소나무 한 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탄소량 6kg의 1.5배를 넘는 양이다. 서울시민 한사람이 1년간 살면서 배출하는 탄소를 흡수해 '탄소 제로'를 만들려면 소나무 600그루가 필요하다.
탄소 제로, 탄소 중립은 배출량과 흡수량이 동일해 0이 되는 개념이다. 도시에 살아가는 전세계 10억명이 배출하는 탄소를 제로화시키기 위해선 최소 6000억 그루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도시에 살아가면서 연간 600그루의 나무를 심지 못하는 사람이면 모두 '기후 악당'이 맞을까? 일종의 프레임 씌우기, 얼토 당토 않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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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는 곳곳에서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은 제주시 오등동 버스정차장에 마련된 전기차 충전소이다. 전기버스가 운행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도=미디어펜 김규태 기자 |
한국 정부, 양치기 소년일까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이라는 악평을 듣는 이유는 정부가 탄소 감축과 관련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이명박 정부의 경우 출범 초기 탄소를 30% 감축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권 말기 오히려 15%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반대로 나아간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계획에 대한 실현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매년 4%씩 탄소를 줄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사태가 일어나 이에 따라 줄어든 것이 거의 전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세계 석탄 감축 노력에 동참해 2050년까지 모든 석탄 발전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내 관련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이러한 약속을 발표하기 몇 주 전 모여 치열하게 논의한 끝에,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석탄 발전소를 7곳 건설하고 있다. 이 발전소들 모두 수명이 30년 이상으로 2050년 이후에도 운용될 예정이다.
에너지 전문가집단 일각에서는 한국이 아직 탄소배출 정점에 오르지도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 대유행 사태가 잦아들면 에너지 생산 및 소비가 재차 올라갈 것이고, 이에 발맞추어 기존 화석연료 소비에 따른 탄소배출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화석연료가 에너지의 80%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본보 취재에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로 기존 화석연료를 완벽히 대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단 1인 가구 증가로 가정용 및 빌딩용 에너지수요가 늘고 있어 재생에너지만으로 감당하기 어렵고, 원자력과 일정 수준의 화석연료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골자다.
결국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정부의 공언은 개개인의 일상에서부터 산업의 모든 부분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규제하고 제단하지 않는한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자유, 에너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 기존 인프라 대비 화석연료 비용의 저렴함, 가격을 좌우하는 건 장기적인 공급 제한이 아니라 일시적인 수요 집중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부의 탄소 감축 목표가 이상에 가깝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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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력 발전기가 다수 설치되어 있는 강원도 대관령 인근 모습이다. /강원도 평창군=미디어펜 김규태 기자 |
'탄소중립 팩트체크' 연재를 마치며
탄소중립은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기업 생존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기후 악당'이라는 악평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기후 변화 심각성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을 실행에 옮길지가 중요하다.
이미 공은 던져졌다. 기후 변화에 따른 막대한 피해를 생각하면 인류 멸절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방아쇠가 당겨졌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탄소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아도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기업이나 개인 차원에서 제대로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외교력이든 재정 지원이든 가용 가능한 수단 모두를 써서 '탄소중립'이 안착하도록 해야 한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