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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비인간 속에서 인간을 이야기하다

2016-07-12 18:59 | 정재영 기자 | pakes1150@hanmail.net

사진=NEW 제공


[미디어펜=정재영 기자] 국내 영화 관객들에게 결코 익숙지 않은 좀비가 찾아왔다. 부산행 KTX는 출발했고, 동시에 한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가 기차 내로 몸을 숨긴다. 한 사람의 감염자로 인해 기차의 질서는 삽시간에 붕괴되고, 우리네같이 다양한 얼굴을 한 소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지옥 같은 상황에 맞선다. KTX는 무사히, 부산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영화 부산행이 드디어 국내 영화 관객들과 마주할 준비를 마쳤다. ‘돼지의 왕’ ‘사이비등의 작품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한 눈에 받고 있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 한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눈을 의심케 하는 화려한 배우진의 만남으로 일찍이 영화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부산행’. 이토록 많은 이들의 기대를 안고 서막을 연 작품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부산행은 구구절절한 부연 설명을 과감히 생략했다. 영화의 시선은 오롯이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부산행 KTX’ 안의 내부 상황에 집중한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그들의 과정을 짐작케 하는 사연은 상황에 주어진 인물들의 행동으로 설명된다. 영상물에서 부연 설명을 위한 가장 쉬운 접근인 회상 장면 역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영화가 물리게 느껴지지 않는 건 부산행의 이런 영리한 선택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부산행의 이야기와 인물들은 충분히 살아있다. 연출자로서 연상호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를 넘나드는 적정선을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던져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는 극중 인물들은 여느 영화 속 인물들처럼 과한 민폐를 끼치지도, 어떤 고난에도 살아남는 불사의 히어로로 남지도 않는다. 다만 끝없이 치닫는 좀비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서도 이들은 자연스러운 등장과 퇴장으로 각자의 강렬한 인상, 고요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길 뿐이다.
 
소위 떼주물이라 표현하듯, 다양한 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 속에서 각자의 인물들이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거는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극의 시작과 함께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인물들은 좀비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각자의 선택을 선보인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인물도,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타인을 먼저 위하는 이타적인 인물도 있다. 자신만큼 친구가 소중한 나이의 소년소녀도 있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몸 바치는 가족도 있다. 아마 부산행에 이렇게나 많은 주인공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래서일 테다. 이들은 결국 모두, 우리의 모습이다.
 
영화를 보는 이들이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극단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두 등장인물이 모두 같은 이유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고, 고로 살아남아야만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 이 소소하고도 소중한 이유 앞에서 다른 선택을 보이는 두 인물의 어느 쪽을 향해서도, 우리는 감히 직언을 내뱉을 수 없다. 가장 숨기고픈 인간의 철저한 이기심, 혹은 가장 희망을 걸고 싶은 인간애의 단면 두 가지 모두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안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각 인물들의 퇴장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성향만큼 다른 모습으로 주어진 결말을 맞이한다. 이는 인물들의 사연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입체적인 캐릭터와 인물들에 적합하게 입혀진 대사와 행동들은 그 자체로 부산행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앞선 이야기들과 더불어 스크린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작품의 시각 효과, 컴퓨터그래픽의 비약적인 발전은 말해 입 아픈 정도다. 기대만큼 우려를 자아냈던 국내 첫 대규모 좀비물이라는 시도는 부산행의 참신한 기술로 충분한 성공을 거뒀다. 보는 내내 단 한 순간도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극적인 긴장감 연출은 덤? 아니, 기본이다.
 
이처럼 철저한 블록버스터로 완성된 부산행이 남긴 것은 앞서 언급했듯, 대규모 스케일 뿐만은 아닐 것이다.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라는 비인간 속에서 인간을 이야기하고자 한 영화가 아닐까. 이토록 비인간적이고 지독한 공포 속에서 인간애에 기대를 져 버리지는 않은 부산행의 시선이 이 작품의 결말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전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부산행은 오는 20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


[미디어펜=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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