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의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의 대표적 매체인 <내셔널리뷰>의 편집장 조나 골드버그가 그의 책 '리베랄 파시즘’에서 美 민주당의 각종 위원회 제도와 함께 '친환경’, '공공보육’ 등이 나치의 전체주의적 유산임을 날카롭게 파헤쳐 명성을 얻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미국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가 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책이나 <내셔널 리뷰>와 같은 매체를 인지하거나 인용 보도하는 언론은 없었다.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며 백악관 대통령 사저 집무실 책상에 꼬박꼬박 오른다는 미국 보수 정치계의 가치 핵심, <위클리 스탠더드>를 읽는 한국 메이저 언론사의 국제부 기자는 아마도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랬다면 트럼프의 시작과 진행, 그 결과에 대해 어떤 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를 둘러 싼 공화당과 보수정치계 내부의 갈등과 찬반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논쟁과 치열한 노선 싸움의 결론은 '미국적 가치의 회복’으로 모아졌다. 트럼프는 그 이념적 가치를 손에 꼬나 쥐었다. 그는 '레이건처럼 되겠다’는 말로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트럼프가 '레이건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이해하는 한국의 언론인들이 있을까. 단지 그 말은 '위대한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이념이 아니다. 레이건은 선거에서 자신이 세우려는 미국을 '神이 축복할 만한 나라’로 규정했다. 레이건이 말한 '언덕위에 빛나는 도성, 아메리카’라는 말은 보수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아니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의 이념이다.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의미다. 바로 도덕과 善의 왕국을 말한다.
부도덕하다는 트럼프가 그것을 선언했을 때,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탕자의 귀환’과 같은 것이었다. 미국의 크리스천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이 트럼프에게 승기를 안겨준 '동부의 청교도 선택’이라는 것이었지만, 이를 알아보는 국내 언론들은 없었다. 미국적 가치의 근본에는 청교도적 기독교 이념이 핵이다. 빈부를 떠나고, 인종을 떠난 선택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우리의 문제는 그의 인성과 도덕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었다.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어느 지식인의 말처럼, 미국을 모른다는 사실 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한국 언론의 맨 얼굴이자 우물 안 개구리의 현실이다./사진=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트럼프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종교차별이니 해피 할러데이라고 해야 하는 미국이다’라는 말로 불을 지폈다. 민주당의 과도한 좌파 이념성이 미국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맹공이었다.그 결과 미국의 제 49대 대통령에 공화당 후보 트럼프가 당당하게 당선됐다. 줄곧 민주당 클린턴 후보의 당선을 점 쳐왔던 미국의 언론뿐만 아니라 한국의 언론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클린턴을 지지했던 미국의 뉴욕타임즈나 CNN은 그럴 수 있다. 미국의 언론들은 정치권과 동업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메이저 언론들도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클린턴 후보와 정치적 동업이라도 했다는 것일까. 왜 트럼프의 당선에 한국의 진보든, 보수든 언론들이 한 숨을 내쉬는가 하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진보 언론들이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주한미군 감축과 방위비 분담증액 등을 정책공약으로 발표해 왔다. 여기에 보호무역을 통한 미국의 경제이익 보호를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 언론들은 트럼프에 반대해 대한민국 안보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해 왔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진짜 그랬던 거라면 우리 진보 언론들로 인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이 트럼프를 망나니 정도로 취급해온 이유는 다른데 있다. 그가 부동산 재벌이며 온갖 추문을 일으켰고, 여성들을 비하하고 동성애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이민자, 소수 인종을 혐오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트럼프의 모습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몸짓과 표현들이었을 뿐, 그 배경에는 미국적 가치와 전통을 무시하고 사회주의에 가까운 진보 이념을 교조적으로 정책에 투영해온 미 민주당의 포퓰리즘 정책에 미국인들이 넌더리를 냈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옳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종교차별을 의미할 수 있기에 '해피 홀리데이’라고 쓰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하는 정책이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했던 점도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상적인 미국인들의 눈에는 '욕지기나는’ 행태였던 것이다.
이민자들의 문제를 놓고 보자면 오바마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정책은 오히려 미국 내 서민복지보다 나았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였다. 오바마 정부가 불법이민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점은 나름 이해할 수 있다지만, 그들이 과거와는 달리,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미국 사회에 공헌한다는 '아메리칸 시티즌 십’ 대신에 육아수당과 푸드 티켓, 그리고 복지 수혜만을 원하는 모습에 미국인들은 진저리를 쳤다.
여기에서 한 술 더 떠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내 다원주의를 실현한다는 이념으로 미국의 전통적 가치인 기독교의 사회적 관습들을 규제해 왔다. 트럼프는 민주당의 이러한 정책들을 신랄하게 조롱해 왔던 것이고, 그것이 미국 사회의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을 막론하고 지지를 얻게 된 배경이다.
트럼프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는 '추락하는 미국의 가치’에 대한 회복 열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욕구가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다./사진=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미국인들에게는 자유권의 개념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 이러한 자유권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기에 미국의 자유주의는 동시에 개인주의가 된다. 하지만 미 민주당의 'Liberal'이라는 개념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에 가깝다.
이는 프랑스 혁명이념을 계승한 것으로서, 미제스와 하이에크로 이어진 경험주의적 자유주의 전통과는 그 뿌리가 다르다. 경험적 자유주의는 소극적 자유주의로서 ’간섭받지 않고, 하지 않을 자유'를 자유권의 중요한 정신으로 보는 반면 오바마 정부나 클린턴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이름으로 강요할 자유'가 본질이다.
트럼프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는 '추락하는 미국의 가치’에 대한 회복 열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욕구가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다. 어줍지 않은 한국 언론들의 트럼프 보도 행태는 한국 언론의 저급한 수준을 민낯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우리의 문제는 그의 인성과 도덕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었다.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어느 지식인의 말처럼, 미국을 모른다는 사실 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한국 언론의 맨 얼굴이자 우물 안 개구리의 현실이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