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 제네시스는 현대자동차의 고급차 브랜드로 지난 2015년 11월 새롭게 출범해 최고급 럭셔리를 지향하며 첫 모델 EQ900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EQ900은 현대차 에쿠스에서 제네시스로 편입되며 이름을 변경시킨 모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G90(지 나인티)로 명명되며 제네시스 브랜드와 새로운 시작을 같이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소비자들의 혼란을 막기위해 EQ900(이큐 나인헌드레드)를 거쳐 지난해 11월 페이스리프트 모델부터 G90(지 나인티)로 정리됐다.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G90은 국내에서 과거 에쿠스가 맡아 왔던 '사장님 차'의 역할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BMW 7시리즈나 벤츠 S클래스, 아우디 A8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들과 경쟁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졌다. 이런 G90를 만나봤다.
시승차는 5000cc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 장착된 5.0가솔린 프레스티지 모델이다. G90모델중 리무진을 제외한 최상위 모델이다.
이 차가 G90라는 이름을 얻는 과정에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디자인이다. G90는 EQ900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가할 수는 없다. 디자인 변화도 기존 모델의 틀 내에서 이뤄졌다.
그럼에도 G90는 EQ900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부분이 변경됐고 새로운 차량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달라졌다.
외관은 전반적으로 화려해졌다. EQ900가 전형적인 의전차 다운 모습의 점잖은 스타일 이었던 반면 G90는 고급감을 강조하는 디자인 요소들로 체워져 있다.
전면은 커다란 방패 모양의 오각 그릴이 대형 세단다운 웅장한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일단 크기가 국내 존재하는 어떤 세단보다 크고, 아래로 급격히 좁아지며 꼭짓점이 범퍼 하단까지 이어지는 파격적인 모습이다. 회사측은 이를 귀족 가문의 문장이라는 뜻에서 '크레스트 그릴'이라고 이름 붙였다.
헤드램프는 제네시스의 시그니쳐 디자인 요소인 쿼드램프가 적용됐다. 길게 수평으로 이어진 주간주행등을 경계로 한 쌍씩 상하로 나뉘어 고급스러우면서도 진보된 기술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같은 전면 디자인에는 소비자별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개인적으로 무난함을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로 대형 고급 세단에 걸맞은 럭셔리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전면 그릴과 헤드램프를 나누는 선에서 시작해 후드와 측면을 거쳐 후면까지 수평으로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한층 안정적이고 묵직한 인상을 준다.
테일램프도 헤드램프와 마찬가지로 상하로 분리된 모습이다. 범퍼 하단의 듀얼 머플러는 납작하게 눌러놓은 5각형으로, 전면 그릴 형상과 통일성을 살리는 깨알 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대형 고급 세단답게 내장 디자인도 으리으리하다. 거의 모든 부분이 촉감이 좋은 가죽이나 원목 소재로 감싸져 있고, 대화면 내비게이션은 대시보드의 수평 레이아웃에 거치적거림 없이 깔끔하게 심어져 있다.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버튼류는 크롬 도금으로 고급스러운 모습을 연출했고, 버튼의 배치나 조작감도 직관적이다.
센터콘솔 위에 오른팔을 걸치고 기어봉 위에 손을 얹으니 세상 편안하다. 변속기는 전자식이지만 버튼이나 다이얼이 아닌 기어봉으로 조작하는 방식이라 낯설지 않은 게 마음에 든다.
시트는 착좌면이나 등받이는 물론 머리받침(헤드레스트)까지 포지션을 조정할 수 있다. 시트 포지션 조정시 디스플레이에 조정 부위나 각도가 표시되는 점도 편리하다.
G90의 고객층이 사장님들과 국회의원 등 '높으신 분들'을 모셔야 하는 만큼 뒷좌석은 편안하고 각종 편의시설이 집약돼 있다. 전동시트로 각도를 조절하면 항공기 비즈니스클래스 못지않은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뒷좌석 좌우 시트를 가로지르는 센터콘솔에서 공조장치와 오디오, 앞좌석 뒤에 부착된 디스플레이 등을 조작할 수 있다.
5.0 가솔린 프레스티지 모델의 암레스트는 접이식이 아니라 고정식으로, 앞좌석 센터콘솔과 이어져 뒷좌석의 좌우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뒷좌석에는 2인만 탑승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뒷좌석 승객은 완전히 분리된 공간을 만끽할 수 있다. 사실 최고급 세단 최상위 트림 뒷좌석을 세명이 끼어 앉는 용도로 사용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3.8 가솔린이나 3.3 터보 모델들은 뒷좌석 암레스트가 접이식으로 3인 탑승이 가능하다.
G90는 오너드리븐(직접 운전하는 차)보다 쇼퍼드리븐(주인이 뒷좌석에 앉는 차)에 가까운 차다. 직접 운전을 하기보다 뒷좌석에서 편안함을 즐기는 차라는 말이다. 하지만 고배기량의 고성능 엔진이 자리한 G90를 오너가 직접 운전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뒷좌석에 모셔야할 승객이 없을 때 G90는 운전자질주 본능을 자극하는 차가 된다는 것.
운전석에서 시동버튼을 누르니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저음의 엔진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저속에서는 가속페달을 밟거나 핸들을 돌리는 느낌이 모두 묵직하다. 브레이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으로 바퀴를 확실하게 잡아준다.
고속도로로 나와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니 고배기량의 V8엔진이 부드러운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리로 다소 야성적으로 변한다. 톨게이트를 지나 본격적으로 차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자 G90역시 기다렸다는 듯 여유롭게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제네시스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이 차는 더 이상 뒷좌석 승객을 위한 차가 아니게 됐다. 1대의 차량구매가 가능하고 의전용과 나만의 즐기는 차량까지 소화해야 된다면 G90가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배기량 대비 높은 출력을 끌어올리는 터보엔진이 대세라지만 기름값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한 고급 세단 오너들에게는 역시 고배기량 엔진의 여유로운 가속과 토크감이 제격이다.
G90의 심장인 타우 5.0 V8 GDi 엔진은 터보엔진처럼 억지로 힘을 짜내는 게 아니라 묵직한 힘을 가득 쌓아두고 언제든 필요한 만큼 사용하라고 여유를 부리는 듯하다.
계속해서 가속페달을 밟아댔지만 속도가 크게 오르는 느낌이 아니다. 계기판을 확인해 보니 속도계는 체감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속도가 오르지 않는 게 아니라 고속에서도 차가 안정적이라 속도가 높아진 걸 체감하지 못한 것이었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모드로 바꾸면 조용하던 엔진음도 좀 더 다이내믹해지고, 가속페달의 응답성도 더 신속해진다.
급회전 구간에서도 출렁임 없이 도로를 단단하게 붙잡고 운전자가 의도하는 만큼의 조향각으로 응답한다. 묵직한 핸들링이 믿음직스럽다. G90는 굳이 얌전히 다닐 이유가 없는 차였다.
반자율주행에 가까운 첨단 주행보조장치(ADAS)의 성능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요즘엔 웬만한 소형 SUV에도 ADAS가 들어가는데 최고급 대형 세단에 각종 ADAS를 넣는 수고와 비용을 아꼈을 리 없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터널 구간에 집입시 알어서 창문을 닫아주는 등의 편의사양이 매력적이다. 또 코너에서는 속도를 맞춰가며 운전을 보조해준다. 직접 운전을 한다고 해도 큰 피로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안전·편의사양이 집합돼 있다는 것이다.
에쿠스의 혈통을 이은 G90은 여전히 국산차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아직 부족함은 있지만 고급수입차와 경쟁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수입차들의 경우 비슷한 급의 차량을 구매하려면 2배에 가까운 비용이 지불 돼야 하지만 G90은 이에 비해 저렴하다.
이런 부분은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차를 현재의 가격으로 만나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본국의 자동차 회사가 없는 곳에서 고급수입차들이 차량가격을 책정할 때 하는 만행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국산차라는 장점이 크다. 그만큼 관리하기 편하기 때문. 물론 차별화된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어 개선되어가고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G90은 국내 현대차서비스센터에서 관리가 가능하다. 어디서든 손쉽게 차량를 고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장점을 보유한 G90은 뒷자리만을 위한 차량이 아닌 운전자까지 만족시켜줄 수 있는 매력적인 차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