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다.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가 합쳐진 단어다. 칡은 휘감고 올라가는 방향이 시계 반대 방향인데 반해 등나무는 시계 방향으로 가지가 말려서 올라간다. 그러니 칡과 등나무를 한 곳에 심으면 둘이 서로 엉켜서 풀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이제 겨우 보름을 조금 더 남겨놓은 대한민국의 20대 국회를 한 단어로 규정하면 '갈등'이다. 국회를 구성하는 여야가 갈등이 아닌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마는, 20대 국회에서는 유독 그 '갈등'이 심화됐고, 결국 '극심한 갈등'이니 '헌정사 최악의 갈등'이니 하는 수식어로 불렸다.
그런데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6년 5월 출범한 20대 국회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서원(순실) 씨의 국정 농단으로 제대로 된 국회 운영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극심한 갈등' 국면에 빠졌다. 그리고 그해 10월 하순 JTBC 뉴스룸에서 터져나온 '태블릿 PC' 보도로 인해 촛불 집회 정국으로 치닫고, 급기야 대통령에 탄핵 요구가 불거졌으며, 12월 3일 헌정 사상 두번째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 의해 발의됐다. 그리고 해를 넘겨 다음 해 3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는 사상 초유 '갈등'의 정점을 찍게 된 것이다.
오른쪽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칡(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 왼쪽으로 올라가는 등나무(민주당)가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한 자리에 심겨진 최악의 상황이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최악의 갈등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헌정사 초유의 일이 또 벌어진다. 지난 해 공수처 설치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 그리고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위한 '신속처리 안건 지정', 즉 패스트트랙이 이뤄진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보다도 패스트트랙이 더 심화된 갈등의 정점이었다. 탄핵 때는 그나마 촛불 집회 등에 부담을 느낀 당시 새누리당의 상당수가 탄핵안 발의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에 보이콧을 통해 국회가 마비된다거나, 물리적 충돌이 생기는 등의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발의 때처럼 온몸으로 통과를 저지하고 울부짖는 장면도 연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1년 여 전인 지난 해 4월 패스트트랙 때는 국회 의안과와 회의실이 점거되고, 야당 의원들이 스크럼을 짜고 날바닥에 드러눕는가 하면 때리고 부수는 '동물 국회'가 재현되며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다른 갈등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탄핵 후에는 탄핵 갈등, 패스트트랙 후에는 패스트트랙 갈등이 모든 갈등의 이유가 되고 시작점이 되고 갈등의 사실상 전부가 됐던 20대 국회가 된 것이다.
사실 모든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 갈등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갈등의 정체성이다. 특히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의회 정치는 당연히 그렇다. 굳이 서구식 민주주의의 개념이 아니더라도 우리 조선사의 당쟁의 역사도 첨예한 갈등의 역사다. 500년의 역사 속에서 단 한 순간도 갈등이 없었던 적은 없고, 그 갈등이 어쩌면 조선의 역사를,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패스트트랙으로 4년을 채운 20대 국회는 여야 갈등의 정점이었고,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갈등이 없는 정치는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21대 국회는 갈등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자료사진)/사진=연합뉴스
그러고보면 정치 뿐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가 갈등이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도, 엘바섬의 감옥 독방에 갇혀있던 몬테 크리스토 백작도 매 순간 갈등을 겪고 살았고, 또 그 갈등의 결과물로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거나 감옥에서 탈옥한다.
20대 국회를 정리 평가하면서 흔히 하는 표현이 '헌정사 최악의 국회'다. 특히 37.7%의 법안 처리율은 역대 국회에서 최저를 기록했고, 그 가장 큰 원인으로 탄핵과 패스트트랙을 대표로 하는 여야간의 갈등을 꼽는다. 갈등이 심해서 법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두려운 말은 아니다. 법안 처리율이 41.7%로 20대보다 6%p가 높았던 19대 국회도, 그 이전 17대나 18대 국회에 비해 법안 처리율이 현격히 낮았고, 그래서 '사상 최악의 국회'라고 불렸다. 그때도 '사상 최악'의 가장 큰 이유는 여야간의 갈등이었을 것이다.
이제 2주 정도 지나면 헌정사상 처음 겪게 될 21대 국회가 시작된다. 거의 국회의원의 5분의 3을 차지하는 슈퍼 여당을 가진 대한민국 국회가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약해진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당에 질질 끌려가며 4년을 절치부심할 것이냐, 아니면 보다 극심한 갈등을 유발해 여당을 괴롭히며 4년을 버틸 것이냐다.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당의 자애로운 배려를 바랄 수도 없고, 악을 쓰고 저쪽 운동장으로 뛰어봐야 가보지도 못하고 힘만 빠질 것이 뻔한 야당, 미래통합당의 현재 처해진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협치'를 외치는 '입'이 있더라도 갈등의 연속일 것이다. 명약관화하다.
심지어 통합당은 자신들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 합당 문제를 놓고도 갈등이다. 또 이번 총선을 통해 확연히 갈라진 보수 세력 안에서도 '중도지향'과 '보수유지'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대선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여당 내의 갈등도 야당 못지 않다. 그게 21대 국회의 태생적 한계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래왔듯, 또 우리의 5000년 역사가 그래왔듯, 심지어 인류의 역사가 그래왔듯, 갈등은 언제나 공기처럼 우리 곁에 있다. 갈등 없이 살아온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러니 갈등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다만 21대 국회는 그 갈등의 정치 속에서 시민들이 이롭다 생각하는 순간순간의 정치를 만들어내면 된다. 그렇게 역사는 항상 발전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