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지난 북미 간 핵담판은 미중, 미러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추진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중국 견제용이었고, 이를 눈치 챈 시진핑 국가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지 6년만에 비로소 북중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미중 사이에서 수싸움을 벌여보려던 북한은 위험을 인지, 중국과 밀착 행보에 나섰다. 북한의 절박함이 사라진 채 개최된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미국이 결렬시킨 것은 당초 목적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어게인 평창’을 기대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조기에 개최하기로 하고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새로 당선된 바이든 대통령과 동맹국 정상인 문 대통령 간 첫 만남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대북정책 조율이 관심사다. 최근까지 정부 안팎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보면 또다시 정부가 북미대화 중재에 나서고 임기 내 4차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빅 이벤트를 좇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트럼프 정부가 북미대화에 나선 것은 과거 리처드 닉슨 정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러시아 견제용 대중정책을 차용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하지만 닉슨 정부 때와 지금의 중국은 경제력을 포함한 국력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 트럼프 정부 때 협상에 나섰던 북한 역시 이젠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더 이상 똑같은 전략으로 북핵 협상을 견인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4월 중 대북정책을 발표할 예정인 바이든 대통령도 앞서 “트럼프와 완전히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일단 바이든 정부가 북핵 문제를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로 삼은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처음 드러난 행보가 중국과 북한을 싸잡아 ‘인권’과 ‘민주주의’로 공격하고 나선 것은 주목된다. 일단 지금까지 ‘대화’보다는 ‘관여’와 ‘압박’으로 대북정책을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3년 전 김정은 위원장은 스스로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이 카드를 처음으로 사용해볼 요량으로 미국에 핵협상이란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미국의 네오콘과 그에 못지않은 중국이란 거대한 벽, 또 자칫하면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로 긴장감이 흐르는 동북아 정세를 절감했을 것이다. 여기에 자신들이 선택해온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제재로 남북교류마저 발목잡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확인했을 터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선택한 길이 ‘자력갱생’인 점이 이런 분석을 반영한다. 북한은 북미대화 과정을 통해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는 너무 위험하고, 미중 갈등이 격화할수록 차라리 중국에 있어서 자신들의 전략적 입지가 유리해질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기적으로 정권이 바뀌는 미국보다 시 주석의 장기집권이 보장된 중국이 예측 가능했을 것이고, 남북관계도 북미관계처럼 한시적일 뿐이다.
이제 문재인정부는 바이든 정부에게 팀 플레이를 주문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과 조율없는 정책은 실행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동맹 중시 기조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에게 바이든 정부를 설득할 카드는 있는걸까. 아직까지도 '북한 비핵화’대신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을 고집하는 정부가 최종 비핵화 로드맵과 냉철한 거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북한이 대화 테이블 뒤로 몸을 감추고 김정은 위원장은 ‘자력갱생’에다 ‘인간 개조’란 말까지 더해 북한주민들을 조이면서 퇴행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미중은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대일로’로 경쟁을 가열시킬 것이고, 한국에 거센 압박이 될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상이 ‘지정적 숙명’에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인 행보를 선택한 만큼 남한도 더 이상 남북 중심의 이상적인 사고에 묻혀 있을 순 없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