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주요 사건 수사를 목적으로 진행한 압수수색 절차 등을 두고 위법성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 일부 강제수사 절차가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이에 공직자 부패 사건을 살펴봐야 할 기관이 기본적인 수사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과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수사까지도 번번이 절차 문제로 발목을 잡혀 계속 난항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연합뉴스는 공수처가 지난 26일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과 관련, 대검찰청 정보통신과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대상자들과 절차를 협의하는 데에만 5시간 이상을 들였다고 28일 보도했다. 이날 오후 늦은 시간이 다 돼서 압수수색을 개시했으나 두 번째 대상자였던 이모 검사가 절차를 설명하는 안내문을 뒤늦게 받았다고 항의함에 따라 수색이 중단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로고./사진=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제공
공수처는 당시 야간 집행 허가를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압수수색 집행을 하지 않은 셈 치자'며 대상자 1명에 대해서만 집행을 마무리한 채 현장 철수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영장에 사실과 다른 기재됐다는 주장이 나옴에 따라 집행 이전부터 위법 논란이 일었다.
공소장 유출 시점인 5월, 당시 해당 수사팀 소속 검사들 외에도 이미 원대 복귀한 검사들까지 압수수색 대상으로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공소장 유출 의혹과 관련이 없는 이들까지 강제 수사 대상에 넣은 건 부당하다며 반발한 것이다. 압수수색 대상자였던 임세진 부장검사는 이날 참관을 마치고 "압색 집행 과정에서 더욱 황당한 일이 많았다"며 "수사 기록 열람 등사를 신청해 대응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둘러싼 위법 시비도 이어져 왔다. 지난 5일 대검 감찰부는 대변인 공용 폰을 압수한 지 일주일 후 공수처가 감찰부 압수수색을 통해 공용폰을 포렌식한 자료를 받아갔다. 때문에 '하청 감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검 감찰부가 대변인 참관 없이 공용 폰을 감식하더니, 그 결과를 '감찰부 압수수색'이라는 형식으로 공수처가 가져간 것은 편법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같은 달 15일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에 대한 공수처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피의자 손준성 대구고등검찰청 인권보호관(검사) 측이 공수처로부터 참관하라는 연락을 뒤늦게 통지받았다며 '사전 통지 의무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있었다.
공수처는 수사 절차 관련 문제 제기가 생길 때마다 "적법한 절차를 지켜왔다"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공수처는 지난 26일 대검 정보통신과를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대상자로부터 압수수색 안내문을 받지 못했다는 항의를 듣자 "안내문 고지는 의무사항도 아니고 영장에도 허위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며 법을 어긴 사실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10일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 압수수색 때도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김 의원 측으로부터 압수수색 허용 범위를 넘어섰다는 반발을 샀음에도 공수처 측은 영장에 따라 집행했을 뿐이라고 표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김 의원실 압수수색 과정 중 △영장 제시 △참여권 보장 △압수물 범위 등 상당 부분이 현행법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김 의원이 의원실 압수수색 개시 50분이 넘어서야 이를 인지했다는 점, 김 의원이 의원실에 도착하기 전 이미 PC 등을 수색했다는 점 등을 감안, 당시 압수수색이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무실 진입'을 영장 집행 개시 시점으로 명시했다.
공수처 해명이 설득력을 잃는 부분이다. '강제 수사 시 적법 절차 준수'라는 수사 기관의 기본 규율을 어겨 수사 역량이 재차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외에도 사건 당사자들이 공수처 수사의 고비 때마다 절차적 적법성 문제를 따지고 들어 수사 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손준성 검사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공수처의 대검 감찰부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 손 검사에 대한 구속 영장 재청구 등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사 조직이 법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장 청구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수사 관계자들이 법을 어겼다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던 만큼 공수처가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놔도 신뢰하기 어렵다"며 "재판 과정에서도 무리한 수사에 대한 반작용이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공수처는 오는 29일 공소장 유출 의혹과 관련, 대검 서버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진행할 예정이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