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다빈 기자]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급하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의 입주자 심사 과정에 부적절한 정성평가가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내부적으로 진행되는 정성평가에서 심사 담당자들의 주관이 반영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심사 기준 및 심사 담당자에 대한 정보도 외부적으로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주자 심사 전 과정은 해당 자치구 담당이라 SH도 관여를 못하고 있어 수요자들만 애가 타는 상황이다.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수요자 맞춤형 주택 전경./사진=미디어펜 이다빈 기자
SH는 주거 수요가 연령층, 가구 구성원, 직업 유형 등 별로 다양화 됨에 따라 이를 반영하게 위해 '수요자 맞춤형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SH와 자치구의 협업을 통해 공급되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은 지역 환경 별 수요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대학생, 청년 창업가, 신혼부부, 예술인, 홀몸어르신, 반려견 가구 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수요자 맞춤형 주택의 입주자 선정 심사 과정에서 소득‧자산 등 객관적 기준에 따른 정량평가 외 심사 담당자들의 주관이 반영될 수 있는 정성평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요자들은 이달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낸 SH 수요자 맞춤형 주택 '은평구 청년 창업인의 집 1‧2호점'에 신청하려면 입주신청서, 금융정보제공 동의서 등과 함께 '사업계획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신청자들이 사업계획서에 서술해야 할 항목은 △자기소개 및 창업 동기 △창업 역량(창업과 관련해 그 동안 준비항 사항) △창업 계획(사업의 필요성, 사업계획 등에 대해 기재) 등이다.
은평구 청년 창업인의 집 1‧2호점의 경우 입주자 선정 심사는 월평균소득과 자산‧자동차 보유 기준액 등에 한해서만 진행된다. 월평균소득 백분위와 자산‧자동차 보유 기준액에 따라 1~5순위까지 차등 구분되며 동일 순위 내에서는 낮은 소득부터 낮은 자산 순으로 최종순위가 결정된다.
이번 은평구 수요자 맞춤형 주택에서는 사업계획서에 대한 정성평가가 심사 항목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다른 자치구에서 공급된 수요자 맞춤형 주택 중에서는 입주자 선정 심사에 정성평가가 반영되는 경우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지난 3월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낸 '강동구 청년창업주택'의 심사 평가 항목에는 '소득 및 자산심사'와 함께 '사업‧활동평가', '기술평가' 등에 대한 배점이 따로 있다. 사업‧활동평가는 신청자가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근거해 심사 담당자들이 창업‧활동 내용과 공동체 활동계획 등을 10점 만점으로 자체 평가한다. 기술평가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권등록 등을 건당 5점으로 최고 10점까지 점수를 줄 수 있다.
특히 심사 과정에서 동점자가 발생했을 때 우선순위가 '기술평가 고득점자', '사업‧활동평가 고득점자', '관내기여도(강동구 거주 여부 등) 고득점자', '소득 및 자산심사 고득점자' 순서로 배정됐다. 비슷한 자격의 신청자들에게 소득 및 자산 수준보다 사업계획서에 서술한 내용이 심사에 더 중요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동작구 청년 맞춤형 공공주택 입주 신청서 내 정성평가를 위한 항목./사진=SH 홈페이지
청년 창업인, 예술인 등 특정 직업군을 위한 수요자 맞춤형 주택 외 일반 청년 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자 맞춤형 주택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확인된다. 지난 3월 입주자 모집 접수를 진행한 '동작구 사당동 청년 맞춤형 공공주택'의 입주신청서에도 정성평가를 위해 신청자들이 서술해야 하는 항목이 포함됐다.
해당 항목은 '청년 맞춤형 주택 입주자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 또는 교육이 필요할지 제안하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다보면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이 생기는데, 입주자로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서로 배려하기 위한 아이디어, 생활매너, 규칙을 제안하라' 등 2개 질문으로 구성됐으며 신청자들은 각 항목에 대해 5~6줄로 서술해야 한다. 신청자들이 서술한 내용은 1차 정량평가(70%) 후 2차 평가(30%)에서 입주자 선정위원회를 통해 심사된다.
SH는 자치구와 함께 진행하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의 입주자 심사는 지자체가 주관하기 때문에 SH가 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SH 관계자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의 유형이 다양하고 자치구 별로 주요 수요층이 다양하다 보니 입주자 심사는 자치구가 담당하고 있다"며 "SH는 실행기관으로서 입주자 명단만 전달 받는 방식이라 심사 관련해 SH가 관여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성평가 항목과 반영도가 자치구마다 다를 뿐만아니라 심사기준과 심사 담당자의 전문성 관련해서도 공개된 것이 없어 수요자들은 답답한 심정이다. 해당 자치구들은 이와 같은 정성평가는 특정 수요층을 대상으로 하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수요자 맞춤형 주택의 심사를 담당하고 있는 A 자치구 임대주택팀 관계자는 "내부위원과 주거 복지 전문가 등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인단이 입주자들의 작성한 신청서를 평가하고 있다"라며 "심사인단에 대한 정보는 추후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년 창업자 대상 수요자 맞춤형 주택을 공급하고 있는 B 자치구 사회적경제과 관계자는 "평가 기준 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지만 창업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 계획이 어느정도 구체적이냐에 따라 점수를 주고 있다"며 "청년 창업 담당 팀에서 계획서를 읽어보고 점수를 매긴다"고 말했다.
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이 입주자 선정 후 '공동체 교육'까지 진행하고 있어 '공동체 의식' 등을 묻는 정성평가가 굳이 심사에 필요하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요자 맞춤형 주택의 예비 입주자들은 입주에 앞서 SH가 진행하는 '공동체 교육'을 필수로 수료해야 한다. 추후 관련 교육까지 진행하는데 심사 과정에서 '공동체 생활 시 갈등 해결방안' 등을 물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SH 관계자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의 경우 공동체 규약이나 커뮤니티실 이용 등이 타 주택보다 강조되고 있고 입주자들의 공동체 활동을 전제로 하기에 일반 임대 유형과 달리 공동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입주자들의 역할과 커뮤니티실 및 공동공간 이용, 입주자들이 관리 규약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 인가에 관한 내용이 교육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