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국 대통령으로서 12년만에 미국을 국빈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인터뷰에서 한 발언에 러시아와 중국이 한꺼번에 반발하면서 각각 양자관계에 긴장감마저 돌고 있다. 러시아는 20일 크렘린궁과 외무부가 잇따라 논평을 내고 반발했으며, 같은 날 중국 외교부는 윤 대통령에게 ‘말참견’이라 언급해 주한중국대사가 한국 외교부에 초치됐다.
21일에도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사실상 윤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해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며 강경 메시지를 냈다. ‘불장난’ 발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을 대상으로 대만 문제와 관련해 여러차례 쓴 표현이기도 하다.
앞서 윤 대통령은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및 학살 등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우리가 인도지원, 재정지원만 주장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해 무기지원을 시사했다.
또 윤 대통령은 같은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의 긴장 상황은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며 “대만 문제는 남북한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서 전 세계적인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선 미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중시했던 것과 달리 서방 중심의 ‘가치외교’로 무게추를 옮겼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이 20일 “대통령의 발언은 가정형으로 표현됐다. 따라서 향후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답한 것을 볼 때에도 윤 대통령의 발언은 ‘준비된 발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우리정부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힘의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발언은 미국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말참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거세게 반발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이 같은 발언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고, 그 이유는 이는 이달 하순으로 예정돼 워싱턴에서 열릴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를 의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PG) 홍소영 제작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후 2번째로 윤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이번에 윤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미군 수뇌부로부터 한반도 안보 상황을 직접 브리핑 받을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한미가 협의 중인 확장억제를 구체적으로 작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한미 연합방위태세 공고화 및 양국간 확장억제 작동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및 반도체·배터리·퀀텀 등 핵심신흥기술 파트너십 확대로 경제안보협력 구체화 ▲첨단기술 분야 인재양성 지원 확대 ▲인도·태평양 지역 포함 글로벌 사회의 당면 과제 공조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워싱턴에서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이 합의될 경우 자칫 한러 관계가 1990년 수교 이전으로 퇴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러시아는 북한을 낀 접경국가이면서도 북핵 문제 해결에서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나라이다. 더구나 최근 미중 및 미러 갈등으로 인해 북핵 문제 해결이 난항을 겪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대만해협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중국이 밀착하고 있어 신냉전 구도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으로선 한미일 협력을 중심으로 한 확장억제를 구체화시키는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윤 대통령으로선 이번 방미 계기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중 전략경쟁이 그 결말을 알 수 없는 장기적인 갈등으로 접어들었고, 세계가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려는 과도기 상황을 맞아 ‘믿음’보다는 정확한 분석과 유연하고 기민한 대응 역량이 더 국익에 부합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는 “윤석열정부는 신념과 미래비전에서 한미동맹 강화론에 확고히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분명한 것은 21세기 미국과 중국 모두 강대국으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중국·러시아와 충돌을 억제하고 관리하는 것도 국가이익에 속하는 실리”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