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한동안 조용하더니 또 한 마디씩 꺼내니까 우려스럽네요. 언제 또 은행장들 집합시킬지 모를 일입니다."
은행권 이자장사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0.25%포인트(p) 인하 발표 이후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높게 유지하면서도, 예적금(수신)금리를 줄곧 인하하고 있다. 금리인하기에는 대출금리와 수신금리가 궁극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는, 이른바 '시장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알려진대로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 조치 때문이다. 연초부터 은행들은 당국의 입김을 의식해 가산금리를 인상하는 식으로 대출금리를 높게 유지했다. 대출에서 금리는 곧 '가격'으로 통하는 만큼, 소비자에게 가장 민감한 금리를 인상해 대출을 억제하겠다는 의도다.
실제 지난 7~8월 은행들은 대출상품의 가산금리를 20여회 이상 인상한 바 있다. 비대면 대출 및 은행 자동이체, 계열 카드사의 결제실적 등을 충족하면 제공하던 우대금리도 모두 축소하거나 없애는 식으로 가산금리를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수신금리 하락은 막을 수 없었다. 대출 영업이 제한된 가운데, 은행이 예금을 유치할수록 비용(예금이자)만 늘어나는 까닭이다. 더욱이 최근 주식 등 자산시장이 지지부진하면서 시중자금은 은행 예금으로 쏠리고 있다.
실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지난달 말 수신잔액은 2044조원으로 전월 대비 약 11조원 늘었다. 특히 정기예금 잔액은 9월 증가폭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로선 '굳이'라는 말과 함께 자금 유치에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이에 은행 예대금리차는 수개월째 상승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은행 예대금리차는 신규취급액 기준 7월 1.14%, 8월 1.13%, 9월 1.22%를 각각 기록했다. 가계대출만 놓고 비교한 예대금리차는 7월 0.65%, 8월 0.73%, 9월 0.83%로 매월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7일 중소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최근 금융권 자금흐름을 보면서 손쉬운 가계대출과 부동산 금융은 확대되는 반면, 기업에 대한 생산적 금융은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사진=금융감독원 제공
비판에 민감한 금융당국은 여느 때처럼 경고성 발언을 내놨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7일 중소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최근 금융권 자금흐름을 보면서 손쉬운 가계대출과 부동산 금융은 확대되는 반면, 기업에 대한 생산적 금융은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본원 임원회의에서도 이 원장은 "최근 일각에서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 예대금리차가 확대되고 있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은행 예대금리차는 연초보다는 낮은 수준이나 최근 몇 달 동안 확대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준금리 인하로 경제주체가 금리부담 경감효과를 체감해야 하는 시점에서 예대금리차 확대로 희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당국 방침에 따라 영업한 결과물인 만큼, 억울하다는 입장을 거듭 내놓는다. 더욱이 은행들은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대출금리 인상 외에도 △중도상환수수료 한시적 면제 △대출만기 30년 축소 △주담대 갈아타기 대면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비대면 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적당히 이자장사하라는 취지로 해석되는데, 그 적당히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며 "예대차를 줄이려면 결국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는데, 대출이 늘어나면 페널티도 부과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정확한 방침을 내놓기 어렵다"고 전했다.
정확히 1년 전, 이 원장이 '상생금융'이라는 미명 하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했던 모습과 대비된다.
"금리를 내려라 할 때 내리고, 올려라 해서 올렸는데,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예대마진이 늘어날 걸 몰랐느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루새 '미국발 리스크'가 우리 금융시장의 변수로 떠올랐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9월 기준금리를 0.50%p 인하한 데 이어 이날 금리를 0.25%p 추가 인하했다. 기준금리가 4.50∼4.75%로 조절됨에 따라, 한국(3.25%)과의 금리차는 1.50%p로 좁혀졌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당장 △채권금리 상승 △부동산리스크 △고환율 등이 리스크로 작용하면서, 금리 발표를 앞둔 한국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한은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대출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예대금리차 축소는 요원해진 셈이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온탕과 냉탕을 드나들듯 금리에 개입하거나 단발성 조치를 취하기보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도 은행들이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방침에 순조롭게 따를 수 있도록, 장기적인 대출지침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시쳇말로 '돈 장사'를 하는 은행의 원천 수익원은 예대마진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언제까지 '은행은 공공재'라는 도그마적 발언에 사로잡혀 결과물에만 집착해선 안 될 것이다. 이를 죄악시하는 환경에서 밸류업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