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 성공·역대급 실적 기록·기업 문화 변화 성과
ESG 경영 본격화…친환경 항공기·연료 도입 적극적 평가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조양호 선대 한진그룹 회장이 서거한지 3년이 지난 가운데 아들 조원태 회장 체제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사모펀드 KCGI는 한진칼 지분을 매각함에 따라 경영권 분쟁 이슈는 완전히 사그라들었고, 코로나19 속에서도 주력 계열사들은 역대급 실적을 내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을 통한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작업이 9부 능선을 넘어 조원태 회장이 제2의 창업을 이뤄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대한항공 제공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전날 경기도 용인시 하갈동 소재 신갈 선영에서 고(故) 일우 조양호 선대 회장 추모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조현민 ㈜한진 부사장·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등 총수 일가와 경영진이 참석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당일 추모 외 별도의 외부 행사는 하지 않았으나, 조 회장 일가는 앞서 고인의 위패가 있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소재 월정사에서 추념했다.

1949년생인 고인은 조중훈 한진상사 창업주의 장남으로, 2003년 회장직에 올랐고, 16년 간 경영 최일선에서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기치 아래 한진그룹을 이끌었다. 재임 중 한국방위산업진흥회장·국제항공수송협회 집행위원·대한탁구협회장·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도 도맡았다.

그는 대한항공을 글로벌 탑티어 항공사로 발돋움시킨 주역이지만,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과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생기자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2019년 3월 8일 대한항공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의 극렬한 반대로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돼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 탓에 평소 앓던 폐 섬유화증이 악화돼 고인은 1개월 후인 4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급서했다.

고인은 "가족들과 잘 협력해 사이좋게 한진그룹 경영을 이끌어 나가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장녀와 장남이 그룹 지주사 한진칼 경영권을 두고 '왕좌의 게임'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처럼 한진그룹은 내부 합치를 이뤄내지 못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임 총수로 조원태 한진칼 회장을 직권 지정했고, 이때부터 3세 경영이 시작됐다.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대한항공 제공

어렵사리 경영 무대에 데뷔한 조 회장은 KCGI-조 전 부사장-반도건설 조합으로 이뤄진 '한진그룹 경영 정상화를 위한 한진칼 주주연합(3자 연합)'의 파상공세에 시달렸지만 결국 표결에서 승리해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산업은행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한진칼 대주주로 올라서며 조 회장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고, KCGI가 지분을 호반건설에 넘기면서 경영권 분쟁이 종식됐다.

경영권 방어 외에도 조 회장 앞에는 각종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코로나 시국 탓에 여객 수요가 급감하자 전방위적 사업부·유휴 자산 매각을 추진해 현금을 확보했고, 23기에 달하는 대형 화물기단을 적극 활용해 여객기 좌석에 짐을 싣는 '카고 시트백' 사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화물 수요가 폭증하자 조 회장은 좌석을 탈거해 화물기로 개조하는 역발상까지 내놨고, 지난해 대한항공은 1969년 창사 이래 별도 재무제표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인 총 매출 8조7534억원, 영업이익은 1조4644억원을 기록했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2년 연속 ATW 주관 '2021년 올해의 항공사'·'2022년 올해의 화물 항공사'로 선정돼 수상했고, 조 회장은 경영 수완을 입증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종합 물류 기업 ㈜한진도 지난해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2조5041억원의 역대 최대 매출 달성과 영업이익 994억원을 거둬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한진은 대전 메가 허브 터미널 건립 등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어 업계 2위 쟁취에 전사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 지난해 12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어린이 자녀를 둔 임직원들에게 메시지 카드를 보냈다./사진=대한항공 제공

대한항공을 필두로 한 한진그룹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어 기업 문화가 대체로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었다. 조 회장은 취임 직후 기업 문화를 바꾸고자 '소통'에 방점을 뒀고, △임직원 초등학교 자녀 입학 선물 증정 △서울 강서구 공항동 본사 카페 운영 △유연 근무제 실시 등을 실시했다. 특히 직원들은 복장 자율화에 환호했는데, 한진그룹 임직원 출근 드레스 코드는 풀 정장 패션이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임직원들은 기업 문화 자체가 젊어졌다며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조 회장의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 우한행 대한항공 전세기에 객실 승무원들이 교민들을 맞기 전 출입문에 서있다. 안쪽 가장 키가 큰 인물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으로 추정된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 외에도 조 회장은 ESG 경영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창궐 초창기, 중국 우한 현지로 떠나는 전세기에 직접 탑승해 교민 수송 작전을 진두지휘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도 했다. 친환경 항공기·연료 도입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업계 최초로 ESG 펀드를 발행해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기업 지배 구조 개선 차원에서 '이사회 의장·대표이사 분리' 정관도 신설했다. 

한편 재작년 11월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격 발표해 글로벌 10위권 메가 캐리어를 이룩하겠다며 국내 항공 시장 재편을 천명했다. 조 회장은 국가적으로 불투명한 항공 산업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는 산업은행 고위 간부의 제안에 대승적 차원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했다. 양 사 합병에 따른 인력 감축 우려가 제기되자 조 회장은 구조조정설을 일축했고, 회사 구성원 다독이기에 나서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M&A 문제는 해외 경쟁 당국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만큼 이를 원만히 해결하는 게 조 회장의 급선무다. 대한항공은 2024년에 아시아나항공을 완전히 흡수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장부상 빚의 총계가 12조5615억6843만원이고, 부채율은 2410.6%로 상대적으로 건실한 대한항공도 동시에 디폴트에 처하게 될 가능성도 도사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조 회장의 승부수가 성공적인 '제2의 창업'을 이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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