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서비스산업이 도입되면서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있었다. 소비자와 만나는 모든 산업군에는 '소비자 만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이러한 정책은 한국 서비스산업의 질적 성장을 가져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블랙컨슈머'라는 말이 나오고 소비자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기업과 직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비자 만족' 정책의 부작용이다. '갑과 을의 전도', '을의 갑질화'가 보다 노골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블랙컨슈머'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따져보고, 기업이나 직원들의 피해사례 등을 소개한다. 아울러 '블랙컨슈머'가 아닌 '화이트컨슈머'가 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제품 구매 후 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을 일컬어 '블랙컨슈머'라고 한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악덕 소비자'다. 단어 그대로 악덕한 마음으로 기업 등을 상대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제품 구매 후 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을 일컬어 '블랙컨슈머'라고 한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악덕 소비자'다. 단어 그대로 악덕한 마음으로 기업 등을 상대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블랙컨슈머의 행태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들 마음의 기저에는 '반(反)기업정서'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노동자를 착취해 돈을 번 기업에게 이 정도 뜯어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심리에서 '악덕' 행동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실제로 충전 중에 휴대전화가 폭발했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어느 블랙컨슈머는 "글을 올리자 대기업 제조사가 소시민인 나를 협박하는 한편 돈으로 회유했다"고 주장 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인터넷 상에서 '대기업 횡포에 맞서는 투사'가 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그의 말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그는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하지만 기업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기업의 이미지 실추가 걱정돼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은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건을 공개해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블랙컨슈머에 적극 대응해 '반전'을 누린 사례가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2011년 식빵에 죽은 쥐를 넣어 자작극을 벌인 범인에게 실형이 선고됐던 '쥐 식빵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2014년 3월, 대형마트 식품에 고의로 거미와 파리를 넣고 식품업체를 협박한 블랙컨슈머 커플이 '공갈 혐의'로 경찰에 구속 됐다.
최근에는 블랙컨슈머 대응과 관련한 매뉴얼, 각종 서적 등이 등장하고 있다. 관련 자료에는 그간 누적된 블랙컨슈머들의 행태와 그에 따른 처벌 수위, 대응법 등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기업이 좀 더 단호해져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블랙컨슈머들의 수법 이 매뉴얼보다 더 정교하고 교묘해지고 있어 이들과의 전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반(反)기업정서, 대체 왜?
한국경제연구원이 19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2014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기업집단'에 대한 호감도는 32%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 모두가 '블랙컨슈머'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 마음속에는 "기업에 그래도 된다"는 묘한 심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여론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반기업정서의 원인으로 '탈법과 편법' 등 기업경영상(51%)의 문제를 1순위로 꼽았다. 그 다음은 정경유착(30.9%), 기업에 대한 사회인식 미흡(8.9%), 경제력 집중(7.8%) 순이었다.
1위로 꼽은 '탈법과 편법' 역시 편견에 불과하다. '탈법'과 ‘편법’을 저지른 기업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잣대는 엄격하다. '땅콩회항 사건', '회장 갑질 사건' 등이 크게 구설에 오르고 그에 따른 처벌이 행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법'에 충실하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되는 것이 기업 세계다. 지켜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기업은 '이윤창출'을 지향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윤리적 허용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을 도모한다. 그럼에도 기업이 '탈법'과 '편법'의 온상이라는 편견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기업의 순기능'에 대한 이해 높이고, 블랙컨슈머엔 단호히 대응
현진권 경제평론가(전 자유경제원 원장)는 "블랙컨슈머들이 악덕을 행할 때 마음 깊숙한 곳에 죄의식이 있지만 기업에 대해서는 그런 마음이 덜할 수 있다"며 "이는 기업의 경제 행위를 탐욕스러운 활동으로 보고, 소비자로서 '정의'를 실행한다는 왜곡된 생각에 더 당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큰 범주로 보면 이 모든 행위는 '반기업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기업의 순기능'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 평론가는 "그럼에도 존재하는 블랙컨슈머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며 "기업은 이들 범죄를 법으로 저지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경제적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