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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왕국' 폭로 미투 운동이 보여준 것은

2018-02-22 14:05 | 김규태 차장 | suslater53@gmail.com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서지현 창원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연희단거리패와 청주대 공연영상학부에 이르기까지 강제추행을 당했던 피해자들이 연일 폭로하기 시작하면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연극계와 법조계 인사들은 '그들만의 왕국'으로 불릴 정도로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조직 풍토 속에 가해자가 본인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위계폭력을 부리는 적폐가 근본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화계 '미투 운동'에 불을 붙인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의 연희단거리패 극단에 한때 몸담았던 한 연출가는 "자신이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 없는 온갖 폭력이 만연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모르는 사정이라는 핑계로 그러한 폭력을 무감각하게 지나치고 침묵한 것 또한 간접적인 폭력 행사"라고 자책했다.

또 다른 연출가는 "최근 세간에 알려진 그들의 성폭력은 알만한 인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가해자에게 꼼짝 못하는 갑질 우려에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으나 이 정도 수준인지 몰랐다"고 밝혔고,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뿌리 깊은 위계 폭력의 적폐가 결국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또한 아직 수직적인 상하 권력구조가 강하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인 잔재가 일부 남아있다고 보았다.

한 부장검사 출신의 법조계 인사는 "검찰조직 내 성추행의 경우 가해자가 상사이거나 우월해 피해자가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문제는 이를 법정으로 가져갈 경우 꽃뱀 프레임으로 2차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법정 증거주의가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재판부가 증거 없는 진술을 인정하지 않아 무혐의로 끝날 수 있고, 피해자 측 녹취가 있어도 가해자 측이 '고의적으로 상황을 유도해 녹취한 것 아니냐'며 꽃뱀 프레임을 씌우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작년에 사회적으로 논란으로 떠올랐던 한샘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는 상사였고 피해자는 말단 사원이었다"며 "조직 내 성추행의 본질에는 '권력관계'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지난달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조직 내 성추행 경험'에 대해 직장인 3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추행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4.1%였고 가해자는 회사 상사 52.7%, 고위급 임원 12.7%로 나타났다.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손명숙 경남여성변호사회장은 이에 대해 "이윤택 사례에서 그가 피해자를 불러 '안마하라고 했다'고 말하면 법의 잣대를 피해갈 수 있다"며 "법정에서 피해자가 성폭력에 항거 불능 상태임을 입증하도록 하게 되어있다는 점이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가해자들은 피해자보다 고위직에 조직 내 영향력이 큰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조직 내 성폭력은 '강자가 약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명백한 갑질이라 실제 사정을 잘 모르는 제3자들이 피해자 입장에서 목소리 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문유석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30일 페이스북에 "가해자들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 그들은 아무리 만취해도 자기 상급자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이들은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며 "가해자들은 자신들에게 실질적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위협이 있어야 억지로라도 조심한다. 우리 사회가 성희롱, 성추행에 대해 가혹할 만큼 불이익을 주는 사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유석 판사는 성추행을 목격하면 방관하지 말고 자신이 나서서 막겠다는 '미 퍼스트(Me First)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조직 내 성폭력이 이미 일어난 경우, 미투나 미 퍼스트 운동으로도 2차 내지 3차 피해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지난해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직장내 성희롱 경험자 2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상자 중 57%가 '이를 문제제기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해임이나 파면 등 신분상 불이익을 받은 경우는 53.4%였고 폭행이나 폭언, 집단 따돌림, 심리적 손상을 받은 경우는 53.4%로 조사됐다.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부터 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가해자 예술인에 대한 작품 지원을 배제할 방침이고, 이경숙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21일 국회 운영위 업무보고에서 문화예술계 성추행 실태 조사계획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의 진정한 마침표가 누구 한 명의 문제가 아닌 조직 내에 만연한 '성추행 용인' 문화를 근절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피해자가 오히려 조직을 떠나야 하는 불합리함이 없도록 주변 사람들이 지지해주는 문화가 절실하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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