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B747-8i 여객기./사진=대한항공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한진그룹이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본격 유휴자산 매각 움직임을 보이자 서울시와 총선을 목전에 둔 정치권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때문에 한진그룹과 인수 희망 기업이 매각 절차에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제기된다.
1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소재 호텔 부지 매각과 관련, 입찰 주간사회사 선정을 마감했다.
대한항공이 이곳을 시장에 내놓은 이유는 2가지로 요약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복귀 여지를 차단함과 동시에 조원태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의 입지를 강화하며 경영난을 해소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기 위함이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 소재 대한항공 소유 호텔 부지./캡쳐=네이버 지도
광화문과 덕성여자중·고등학교 사이에 위치한 이곳의 면적은 3만6642㎡에 달하며, 서울 중심부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통한다는 게 부동산 업계 전언이다. 송현동 부지는 당초 대한항공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인수해 7성급 한옥호텔을 짓고자 했던 곳이나, 서울특별시교육청으로부터 유해시설 설립 반려처분을 받고 유휴지로 남겨둔 곳이다.
그런 만큼이나 이 부지에 대해 욕심을 내는 거물들이 존재한다. 바로 서울시와 정치권이다.
2000억원 제시 서울시…대한항공 "낙찰가 6000억원 예상"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에 대한 강한 인수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 때문인데, 시는 매입 대상자가 된 것 마냥 부지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서울시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대한항공에 인수의사를 타진하며 2000억원 가량 불렀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제안이 들어온 것은 사실일 것"이라면서도 "현재 4500억~5000억원 가량 평가되는 송현동 부지가 본 입찰에 부쳐질 경우 6000억원까지도 내다본다"고 전했다. 시장 가격과 낙찰 예상 가격 모두 서울시가 제안한 금액보다 최소 2.25배, 최대 3배 가량 높은 셈이어서 괴리가 상당하다.
이낙연·황교안 등 정치권 거물들도 동상이몽
서울시 외에도 정치권 역시 이 땅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종로구는 4·15 총선 주요 승부처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낙연 후보와 미래통합당 소속 황교안 후보가 맞붙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알리미에 따르면 이낙연 후보는 송현동 호텔 부지에 소나무 숲을 복원하고 민속박물관 등 문화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황교안 후보는 "신 산업과 뿌리 산업을 연계해 종로 경제를 살리겠다"며 "송현동 부지를 활용해 4차산업혁명 전진 기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공약집만 보면 공유지처럼 보인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그러나 이곳은 엄연한 사유지다. 이와 같이 관가와 유력 대권 후보 등 정치권에서 대한항공 소유 부지를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이 있다 해도 매각·인수 주체 모두 부담스러워 할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재계에선 서울시와 정치권이 김칫국부터 마실 게 아니라 기업 살리기를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대한항공의 올해 만기 도래 차환·상환 액수는 4조5342억원이고,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현금 흐름이 막혀 2월 이후 여객선 매출액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송현동 부지가) 6000억원에 팔린다 해도 평소 1개월분 매출에 지나지 않는다"며 "온 돈 다 받아도 재무구조 개선에 크게 도움은 안 될 것이고, 잠깐 숨통 트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