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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추미애, '추다르크'라지만 '잔다르크'는 될 수 없다

2020-12-03 15:16 |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1429년 어느 날, 19세의 소녀 잔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때는 왕위계승을 놓고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100년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고,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잔다르크는 적진을 뚫고 샤를 황태자가 은거하고 있는 시농성으로 간다. 흰옷과 흰갑주를 입고 잉글랜드군을 궤멸시키는 잔다르크. 결국 잉글랜드가 지배하던 프랑스 북부 오를레앙 지방을 되찾은 잔다르크는 랭스의 한 성당에서 황태자를 옹립하고 그를 샤를 7세 황제로 만든다.

당시 잉글랜드 군사들에게 잔다르크는 공포 그 자체였다. 프랑스군을 가지고 놀 듯 희롱하던 그들이었지만, 흰 갑옷을 입고 홀연히 잔다르크가 나타나면 적들은 추풍낙엽처럼 목이 떨어져 나갔고, 잉글랜드군의 시체가 들판을 산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잔다르크 덕분에 잉글랜드군을 프랑스 땅에서 내몬 샤를 7세와 프랑스의 귀족들은 잔다르크를 계속해서 영웅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대리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00년을 넘게 끌고 온 전쟁에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잉글랜드군을 완전히 대륙에서 몰아내기 전까지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잔다르크가 부담스러웠고, 잔다르크만 아니라면 전쟁을 멈추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1430년 5월 콩피에뉴 전투에서 잔다르크가 잉글랜드에 협조하고 있는 부르고뉴군에게 생포되고, 부르고뉴군은 그를 잉글랜드에 넘긴다. 당장이라도 잔다르크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잉글랜드는 샤를 7세에게 몸값을 지불하면 잔다르크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잔다르크에게 열광했던 민중들은 당연히 샤를 7세가 잔다르크를 데려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샤를 7세는 그러지 않았고, 결국 잔다르크는 1431년 5월 30일 마녀라는 혐의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을 당한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처음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은 1995년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정계 복귀를 준비하며 새로운 당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던 때다.  

이후 25년 동안 추 장관의 정치인으로의 삶은 화려했다. 그는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었고, 최초의 5선이 된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이었으며, 그런 가운데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되기도 했다. 

특히 1997년 대선 때 추 장관은 ‘잔다르크 유세단’이라는 걸 조직해 김 전 대통령을 대중 속에 깊이 인식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고, 그 바람에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김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는 일익을 담당했다. 560년 전 잔다르크가 홀연히 나타나 샤를 황태자를 샤를 7세 황제로 만들었던 것처럼.

‘대구의 딸, 광주의 며느리’, ‘추장군’, ‘추임스 미애보이’, ‘추날두’, ‘선거의 여왕’ 등 다양한 별명이 있었지만, 대중들이 가장 오랫동안, 많이 기억하는 추 장관의 별명은 역시 ‘추다르크’다. 특히 고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이어져 온 지금의 민주당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추다르크’가 추 장관을 가장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별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추 장관은 ‘민주당의 잔다르크’였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런 ‘추다르크’ 추미애 장관이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잔다르크’가 되고 있다. 임기 후반에도 불구하고 40%에 이르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뽑은 검찰총장으로 인해 레임덕의 위기에 몰린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추 장관이 큰 검을 높이 들고 전쟁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윤 총장과의 전쟁에서 추미애 장관은 잔다르크가 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추 장관은 결코 ‘문 대통령의 잔다르크’가 될 수 없다. 우선 잔다르크는 당시 극소수의 권력층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민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샤를 7세가 잔다르크의 죽음을 방기한 이유 중 하나도, 국왕인 자신보다 민중들의 신망을 더 받는 잔다르크에게 질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추 장관은 결코 절대 다수 대중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검찰개혁’에 동의하고, 그래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자신의 조직에만 충성하는 검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조차도 이번 추 장관의 윤 총장 징계 과정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이 제기한 ‘직무 정지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도, 절차상의 부당성을 이유로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즉,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합당한지 부당한지와는 별개로, 검사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를 결정하기도 전에 직무에서 배제한 것은 징계 이전에 해임과 동일한 징계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윤 총장 징계 의지가 강한 것은 그렇다 치고, 자신이 판사 출신이면서도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판사들의 판단을 과신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검찰개혁’에 동의한다고 해도 억지를 쓰며 절차도 무시한 추 장관의 행동이 정당하게 읽히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저간의 억지스러움이 결국 3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심각하게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즉, 민심이 추 장관을 지지해주지 않는다는 방증인 셈이다.

또 추 장관이 잔다르크가 되려면 결국 문 대통령이든 민주당에게 버려져야 한다. 물론 잔다르크도 본인이 버려지기를 바라고 버려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추 장관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윤 총장과의 싸움 끝에 처참하게 화형을 당하는 신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추 장관은 결코 자신의 정치 인생을 윤 총장과의 싸움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설령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추 장관의 버리는 카드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추 장관이 거기에 응할리도, 또 그렇게 당할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추 장관은 결코 잔다르크가 될 수 없다.

잔다르크는 나라를 구해 이후 프랑스의 성녀가 됐지만, 추 장관은 나라를 구하기는커녕 정권을 위기로 끌고 가고 있다. 부동산 악재 속에서도 임기 후반 4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하던 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에 심각한 균열을 냈다. 집값과 전세 대란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국민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정신적 번잡함도 줬다. 불과 7개월여 전에 177석이라는 막대한 의회 권력을 민주당에게 준 유권자들이 후회와 탄식의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잔다르크는 절차니 형식이니 하는 것 따지지 않고 그저 잉글랜드군의 목만 많이 베면 되는 피 튀는 전쟁터에 뛰어들었지만, 추 장관은 절차도 따져야 하고, 형식도 제대로 갖춰야 하고, 그래서 지지하는 민심에게는 정당성을, 지지하지 않는 민심에게도 불가피성을 주고 치러야 하는 시스템의 전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적’의 목만 벤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면 추 장관은 ‘적장’의 목을 베고도 전쟁에서 지는 전쟁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뱀말.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전쟁과는 별개로, 추 장관이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들먹인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그가 과거 노 전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고 탄핵을 주도했던 과거를 끄집어내면서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온당치 않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던 새천년민주당 의원 중 탄핵을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죄한 사람은 추 장관뿐이다. 광주 금남로에서 5.18 민주묘역까지 15km 구간을 삼보일배했는데, 15km를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진대 삼보일배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행위라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 중 그리 할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아무개 전직 대학교수나 모 정당의 당협위원장 등은 추 장관을 비판하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야말로 노 전 대통령을 끌어들여서 추 장관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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