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올해 정부가 전략적 미래 먹거리로 미래자동차·반도체·이차전지·수소경제 등 신산업에 방점을 찍은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인공지능(AI)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래차 경쟁력의 핵심이 친환경 연료와 자율주행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불균형’이라는 지적이다.
자율주행기술력과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이 접목된 트레일러./사진=미디어펜
정부는 ‘K-반도체’·‘K-배터리’ 전략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시스템반도체 공급망 구축, 전고체배터리를 비롯한 이차전지, 수소 상용화를 위해 막대한 투자계획과 세제혜택을 내걸었다.
국내 완성차제조기업들도 향후 사업 초점을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에 맞췄다.
그러나 연구개발(R&D) 투자에 있어서 시대요구인 탄소중립 달성과 이를 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의 이유로, AI를 비롯한 자율주행 기술보다 수소연료 개발과 수소 인프라 확장 등, 친환경 쪽으로 무게가 더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친환경·디지털기반 산업혁신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전환·에너지신산업 육성에 주안점을 두고,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 대비 5.6% 증액한 11조 8135억 원으로 편성했으며, 이 중 친환경·산업전환 분야가 5조 8274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친환경·산업전환 분야의 주요 기술개발 지원에 소재·부품·장비(소부장) R&D 8410억 원, 기계장비산업 R&D 1581억 원, 전략핵심소재자립화 R&D 1842억 원 등의 대규모 예산이 반영된 반면, 자율주행 R&D에는 겨우 362억 원이 편성됐다.
에너지 분야 산업부 예산 반영 현황./자료=산업부
이와 동시에, 수소경제 구축 및 탄소중립 등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4조 8271억 원 편성 등, 정부가 미래차와 관련해 AI 등 첨단기술개발보다 친환경 쪽으로 지원을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성차제조기업의 R&D 규모도 독일 폭스바겐 약 20조 원, 일본 토요타 약 12조 원에 비해 현대·기아자동차는 5조 원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0년 약 224조 원에서, 오는 2035년 약 137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달 시장조사 업체인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의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순위 최상위권에는 웨이모·포드·GM크루즈·인텔 등 미국기업과 바이두 등 중국기업 및 독일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집계됐고, 국내 기업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서도, 자율주행차 기술 수준을 미국 100점 기준으로 중국은 85점, 우리나라는 80점에 그쳤다.
민경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자율주행지능연구실 실장은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부품 국산화율은 99%에 이르지만,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의 국산화율은 38%에 불과하다”면서 소프트웨어(SW), AI 등에 대한 원천기술의 부족을 지적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정보통신(IT) 서비스 강국이지, IT기술·생산 강국이 아닌 것처럼,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일반 완성차 제조분야에서는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지만,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미국·독일·일본 등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기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정부가 과감한 정책 개선을 통한 R&D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개발이 이뤄지려면 결국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선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등 과감한 세제혜택이 지원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5년간 민간 R&D 투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대기업의 R&D 부진과 정부의 낮은 R&D 지원 수준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경연이 지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민간 기업 R&D 투자의 연평균 증가율을 5년 단위로 비교해본 결과, 2019년 기준 민간 기업 R&D 투자액 중 대기업 비중은 76.7%로 상당 부분을 차지했는데, 최근 5년간 대기업 R&D 증가율은 직전 5년간 연평균 증가율 14.1%의 절반 수준인 7.3%로 둔화된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즉 대기업이 민간 R&D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들의 R&D 투자에 따라 전체 민간 R&D의 등락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한국은 대기업 대 중소기업 R&D 정부지원의 격차가 24%가 나타나는 반면, 주요 5개국(G5)은 이 차이가 4%에 그쳤다”면서 “중소기업 R&D 투자 세액공제율 25%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대기업의 경우 2013년까지 3~6%였던 세액공제율이 2018년에는 0~2%로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심현철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아직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AI 개발자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AI 관련 인재 양성 및 실증화 등을 위한 R&D 지원을 통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나가야 하는 더딘 길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앞당겨, 나중에는 추월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