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시완 범죄심리학자·범죄학 박사 |
영화 ‘탐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국내 최대 미제살인사건 카페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 강대만은 만화방을 운영하는 평범한 30대. 젖먹이 아이 보랴 부인 눈치 보랴 일상에 치여 산다. 셜록급의 추리력은 있지만 도시 쓸 데가 없다. 경찰서를 기웃거리며 수사에 도움을 주는 듯하지만 언뜻 보기엔 동네 건달. 광역수사대 출신 레전드 형사 노태수에게 그저 그런 추리 실력의 대만이 성가셔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이자 강력계 형사인 준수가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되자 진범을 찾기 위해 두 사람은 비공식 합동수사 작전을 개시한다”. 추리소설에나 등장하는 ‘교환살인’이라는 살인범죄 컨셉이 영화 스토리를 이끈다. 코믹 배우로 돌아온 권상우, 그리고 성준, 성빈, 성율의 아빠로 유명세가 더한 성동일과의 케미가 돋보이는 영화다.
대한민국에 탐정은 없다. 민간조사원이 있을 뿐이다. 사설탐정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한국에서 법률문언으로 약속된 명칭, 민간조사원. 정확히 말하면 민간조사원도 앞으로 존재하게 될 신종직업군에 불과하다. 현재로선 심부름센터 직원만이 실존한다. 심부름센터는 겸손한 네이밍 답지않게 불법과 적법을 가벼이 오가는 음지의 전문 직종으로 각광받고 있다.
▲ 영화 '탐정:더 비기닝' 스틸 컷. |
법률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한국형 사립탐정이 할 만한 일로서 돋보이는 것은 별로 없다. 불법행위자 소재파악과 피해사실 조사 정도가 전부이다. 이혼사건 증거수집도 빠질 수 없을 것이나 심부름센터가 보여주는 현란한 기법들은 오히려 제한될 가능성이 많다. 위치추적 장비나 해킹프로그램 등은 제도적으로 금지될 것이 뻔하다. 심부름센터 운영업자들은 이런 국면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퇴직 후 자격증이 하나 생기는 것이니 수사기관 입장에서 당장은 주저할 바 아니다. 법통과 후 한국의 사립탐정은 ‘할 일 없는 공인(자격증)탐정’과 ‘할 일 많은 비공인(불법)탐정’으로 나뉘지 않을까.
어쨌든, 영화 속 권상우는 한국형 탐정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었다. 권상우는 형사와 함께 범죄자를 찾고 범죄혐의를 규명하는 일을 하였다. 미국의 주법에 따라서는 경찰 수탁을 받아 범죄자 신병을 찾아나서는 탐정회사를 허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범죄자 소재를 파악하여 체포하는 등의 수사업무는 형사소송법이 허용하는 사인(私人)의 현행법체포 외에는 일반인이 일체 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것이 우리 법의 입장. 일본도 마찬가지다.
▲ 영화 '탐정:더 비기닝' 스틸 컷. |
그건 그렇고, 영화 ‘탐정’의 권상우가 범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탐정업무’라기보다는 범죄자 ‘프로파일링’에 가깝다. “범행 현장에서 범죄자가 나타낸 다양한 행동의 분석을 통해 범죄자의 배경 특성을 추론하여 범인 검거에 기여하고 범인의 협조를 얻게 하는 수사 기법”. 범죄자 프로파일링의 학문적 개념이다. 권상우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은 용의자들의 범행 방식에 대한 행동과학적 분석이었다. 교환살인이라는 범행 행태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것은 탐정이 아니었고 프로파일링이었다. 권상우는 프로파일러였다.
영화 말미에 성동일은 경찰을 그만두고 권상우와 탐정 사무실을 차린다. 신용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그들은 탐정이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는데 일단 저지르고 본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아직은 불법) 탐정 사무실. 대한민국 탐정의 길은 멀고도 멀다. /성시완 범죄심리학자·범죄학 박사·죄와벌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