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허가받은 전기차만 운행 가능...자연 보호 주민들의 '양보'
촘촘한 철도 인프라가 지원…자동차 없이도 편안한 이동 가능하게
   
기후 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음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상황이다. 강대국과 글로벌 리더, 기업들은 기후 재앙을 피하자는 대원칙 속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문제는 세상이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점이다. 기업 전략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한국 역시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표완수)의 지원으로 제작된 이번 연재보도의 목적은 팩트체크를 통해 탄소중립의 현실을 짚어보고, 도약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기후 대응에 선도적인 국내·해외 사례를 담고자 했다. 미디어펜은 국내 사례에서 울산·포항·부산·제주 지역을 방문했고, 해외의 경우 스웨덴·스위스·프랑스에 코로나19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가 직접 찾아가 각국의 탄소제로 환경정책 성과와 현지 목소리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편집자주]

[시리즈 싣는 순서]

⑨'100% 전기차 마을', 스위스 체르마트
⑩우등생 프랑스도 이상기온엔 '속수무책'

   
▲ 스위스 마테호른산/스위스 체르마트=미디어펜 김상준 기자
[스위스 체르마트=미디어펜 김상준 기자]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전기차와 관련 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최근 1~2년간 전기차는 100년이 넘는 기존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화제의 중심에 있다.

자동차 전문 기자로서 ‘엔진 자동차’를 허락하지 않는 마을, 스위스 체르마트는 늘 궁금한 미지의 장소였다. 전 세계가 ‘전기차 보급의 원년’으로 삼은 2021년 가을, 체르마트를 방문해 ‘전기차 마을’의 실상을 들여 다 봤다.

체르마트 기차역에 내리자, 그간 익숙했던 자동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승합차 ‘다마스’ 크기의 낯선 전기차가 택시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3~4대 정도에 불과했다. 

   
▲ 체르마트 기차역에서 관광객들의 이동수단으로 이용되는 택시. 그마저도 3~4대에 불과할 정도로 운영되는 차량이 적다./스위스 체르마트=미디어펜 김상준 기자
   
▲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허용된 '내연기관' 자동차는 병원에서 사용되는 응급차가 유일하다./스위스 체르마트=미디어펜 김상준 기자
여의도 정도 크기의 작은 마을인 체르마트는 스위스의 관광 명소 ‘마테호른’이 가장 잘 보이는 전원 마을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이 마을은 관광지로 각광을 받았고, 유럽 각지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자동차가 처음 개발된 1900년대 초반부터 체르마트는 곧바로 자동차 운행이 금지됐다. 차에서 배출되는 매연·일산화탄소 등이 청정마을의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거주하는 주민들이 나서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한 것이다.

이후 1961년 법으로 내연 기관 차량 운행이 금지됐으며, 그 이후 마을의 대규모 건축 공사 등 관련 중장비 차량이 운행된 것을 제외하면 체르마트에서 일반 자동차가 운행된 적은 없다. 

다만 병원에서 사용되는 응급차는 예외로 내연 기관 차량을 운행 중이다. 긴급한 환자 이송이나, 급작스러운 이동을 위해, 배터리 충전 소요 등 단점이 있는 전기차를 배제한 것이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 스위스인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체르마트 전기차 담당 공무원 저르나 혜르둥씨/스위스 체르마트=김상준 기자
체르마트 전기차 담당 공무원 저르나 혜르둥은 “체르마트에서는 원칙적으로 전기차만 등록·운영이 가능하며, 대중교통인 버스도 전기버스만 운영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운영되는 전기차는 스위스 법안에 맞춰 오염 물질 배출을 최소화한 사양으로 제작된다”며 “호텔, 음식점 등에서 운영되는 전기차가 대부분 비슷하게 생긴 이유가 바로 규격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스위스 전역은 맑은 공기와 청정자연으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체르마트는 유독 자연경관이 뛰어났다. 실제로 스위스 제1의 대도시 취리히와 체르마트를 비교해 본 결과, 미세먼지 농도 등 대기질의 깨끗함은 체르마트가 월등한 것으로 확인됐다.

체르마트에서 3대째 호텔을 운영 중인 아네뜨 뜬네안나는 “우리는 8명의 대가족이지만, 호텔에서 운영 중인 전기차 1대가 유일한 자동차”라며 “여러 명이 이동할 때 다소 불편함은 있어도, 장거리 이동 시 기차를 타면 되고 전기차 운영은 체르마트의 자연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 체르마트에서 건물을 증축하거나 공사할 때는 세부적인 사전계획서 및 오염 방지를 위한 대책이 사전에 제출돼야 한다. 공사장 내 오염물질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벽을 친 모습이 인상적이다./스위스 체르마트=김상준 기자
   
▲ 아네뜨 뜬네안나씨가 전기차를 운행 중이다./스위스 체르마트=김상준 기자
그녀의 말처럼 체르마트 거주민들은 자동차가 없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제한된 전기차 운행에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마을이 크지 않기 때문에 도보로 30~40분 정도면, 이동이 가능하고, 스위스 전역을 촘촘하게 이은 철도망 덕분에 개인 자동차를 필수로 삼지 않는 분위기다.
 
또한 집집마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1~2대씩 필수로 준비돼 있으며, 도로에서도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전기차 담당 공무원 저르나 혜르둥은 “현재까지 체르마트는 최신 전기차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전동 킥보드 등 관련 제품을 도입해 교통약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은 보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기차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던 체르마트는 자연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주민들의 올바른 생각 △강력한 법안 및 정책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는 뛰어난 철도망이 어우러져 억지스럽지 않았으며, 조화로움이 돋보였다.

결론적으로 세계 각국이 전기차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상황에 맞는 ‘최적화 모델’을 개발하고 관련 인프라를 형성한 뒤 실행해야 급격한 전기차 보급에 따른 심각한 문제점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 30년 넘게 운영된 이 호텔의 이동수단은 작은 전기차와 자전거 2~3대가 전부다./스위스 체르마트=김상준 기자
   
▲ 체르마트 버스 종점. 여의도 크기의 작은 마을 체르마트에서 운영되는 버스는 총 10대이며, 100% 전기차로 구성돼있다./스위스 체르마트=김상준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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