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파산선고 건수, 8월까지 총 626건…전년 동기 누계 대비 117.4%↑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최소 1년 유예해야"
임종화 청운대학교 교수 "고용 인원만 늘리는 사회주의 경제 모델 표본"
   
▲ 정시 퇴근하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정부와 여당이 내년부터 50~299인 규모의 사업장에서도 시행될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중소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근무 시간을 제한하는 정책 도입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당정은 내년 1월 1일부터 50~300인 미만 규모의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될 경우 해당 기업들이 겪게 될 혼란을 감안해 계도기간 부여·인건비 일부 지원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부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020년 1월 1일부터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되는 근로시간으로 인해 애로를 겪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찾는 중"이라고 한 바 있다. 지난달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석 연휴에 중소기업 현장을 돌아본 후 페이스북에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에 대해 정부의 최종 대응 방향도 재점검 해야겠다"고 게시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달 9일 주 52시간제 도입을 미루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중소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주 52시간 근무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기업들에게 수용 여건을 충분히 조성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로 인해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정책 수정을 시사한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따라서 당정의 기존 입장을 번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됐고, 문재인 정부 내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속도조절론이 공식화 됐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관련 정부 부처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준비가 끝나지 않은 중소기업들에 대해 계도기간을 6개월 가량 주고,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을 적용할 계획이다.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은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받고 있는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된 것으로, 근로시간이 줄어 신규 직원 채용 시 1인당 80만원씩 최대 2년까지 지원하는 고용노동정책이다.

그러나 일부 민간기업에 세금을 투입해 임금을 보전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며, 한시적으로 시행할 경우 그 이후의 인건비 부족분은 고스란히 민간기업들이 책임져야 해 실효성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정부가 급격히 끌어올린 최저임금 탓에 경쟁력 저하가 뚜렷해진 중소기업에 부담을 지워 정부가 중소기업계에 푼돈을 주고 줄도산을 종용하는 꼴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 9월 16일 기준 올해 8월까지의 법인 파산 접수 및 처리 건수./자료=법원통계월보

실제 법인 파산과 관련한 법원 통계 월보에 따르면 8월까지 접수된 건은 총 626건으로, 지난해 전년 동기 누계 533건 대비 117.4% 늘어난 수준이다. 이 추이대로라면 지난해 총 807건이었던 법인 파산 건수를 앞지를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한편 회생신청 규모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어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에 돌아오겠다는 기업 수는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회생과 법인 파산 신청 규모는 상호 비례한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현재 중소기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연기와 임금 지원 등의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달 25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중기중앙회 이사회 회의실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들을 초청해 △근로시간 유연제도 확대 △최저임금 구분적용 및 결정기준 개선 △주휴수당 노사자율화 △외국인근로자 수습확대 및 현물급여 최저임금 산입 △1년 미만 연차휴가 서면촉진제도 신설 등중소기업의 노동현안에 대한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대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이 기술개발과 혁신에 집중해야 하는 현재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노동규제로 현장은 매우 지친 상황"이라며 "전체 중소기업 중 56%가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경제상황·중소기업 준비상황 등을 고려해 도입시기를 최소 1년 유예하고, 우리나라가 경쟁하는 주요 국가 수준으로 다양한 유연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당초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사달도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종화 청운대학교 교수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고용 인원만 늘리는 사회주의 경제 모델의 표본"이라고 규정하며 "청년 실업난 해소와 전문인력 양성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라고 평가절하했다. 임 교수는 "문재인 정권 역시 주 52시간 근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일자리 함께하기' 따위의 사업을 시행한 모양"이라며 "지표상 고용률이 늘어나는 숫자놀음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은 무엇이 됐든 간에 기업에 압박으로 작용한다"며 "인력 채용 등 노동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큰 파장이 생겨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기업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도입하지 말았어야 할 최악의 고용노동제도"였다며 "이럴 거면 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했느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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